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 "기술 독점 않고. 국내외 회사와 협력"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52)은 최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가진 바이오스펙테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힘주어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4차 산업혁명으로 꼽히는 ‘바이오 융합기술’의 핵심기술로 활용되면서 기존 산업의 지형을 새롭게 바꿀 것으로 확신했다.
크리스퍼는 원하는 DNA를 자르고 새로운 DNA를 삽입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 교정기술이다. 1세대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FN), 2세대 탈렌(TALEN)보다 다루기가 쉽고 간편하며 기술의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아 기초연구, 동·식물의 품종 개발, 질병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크리스퍼를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이 지난 6월 크리스퍼를 이용한 인가 대상의 차세대 세포치료제(CAR-T)의 임상을 승인했으며 농무부(USDA) 역시 최근 유전자를 교정한 버섯을 GMO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에서도 인간수정배아관리당국(HFEA)도 올해 2월 인간 배아 유전자를 편집하는 연구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에디타스 메디신(Editas Medicine), 인텔리아 테라퓨틱스(Intellia Therapeutics) 등의 유전자 가위 기반의 기업들도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며 임상 준비에 나서고 있다.
김 교수는 "2012년만 해도 전세계에서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랩이 수십 개에 불과했지만 4년만에 전세계 1만여곳으로 늘었다"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지 모를 정도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잠시 한 눈 팔면 한 순간에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선 기술-뒤처진 환경,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은 크리스퍼의 중심에 기초과학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이 있다는 점이다. 1세대 징크핑거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유전자가위 분야를 연구한 김진수 단장과 바이오기업 툴젠을 중심으로 국내 연구진들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술력만 보면 세계 어느 연구진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툴젠이 크리스퍼 미국 특허 등록에 가장 먼저 성공한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보다 먼저 출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크리스퍼를 상업적으로 가장 먼저 활용한 것도 툴젠으로 2013년 3월부터 연구용으로 크리스퍼(CRISPR-CAS9) 판매를 시작했다.
김 단장과 연세의대 김동욱 교수, 고려의대 김종훈 교수로 이뤄진 공동 연구팀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혈우병의 치료가능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해냈다. 같은 해 툴젠과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팀은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많은 슈퍼근육 돼지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 역량은 차세대 유전자가위 시장에서도 우위를 자신하는 경쟁력이다. 김 단장은 최근 차세대 크리스퍼로 주목받는 'CRISPR-Cpf1'의 유전자 교정 정확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해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선 기술력에 비해 제도나 인프라는 뒤처져 있다. 당장 걸리는 것은 생명윤리법이다. 현행 법은 유전자 치료 및 연구 대상을 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치료를 위한 연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 단장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새로운 치료법은 FDA, EMA가 규제하지만 우리는 KFDA에 더해 생명윤리법까지 이중규제를 하고 있다"면서 "결국 미국 등보다 임상 진입이 더딜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세계 최초로 유전자가위로 치료가능성을 입증한 혈우병의 경우에도 대체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유전자치료가 가능할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툴젠의 연이은 코스닥 실패에서 보듯 국내에서는 유전자가위를 산업화단계로 이끌 자본 마련도 녹록지 않다. 나스닥에 상장된 툴젠의 경쟁사인 에디타스 메디신와 인텔리아 테라퓨틱스의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7000억~8000억원에 이른다. 에디타스는 MIT로부터 크리스퍼 기술 특허권에 대한 라이센스를 받았으나 이 특허에 대한 무효 심사가 진행 중이고 인텔리아는 UC 버클리 대학으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았으나 이 특허는 아직 등록조차 되지 않았다. 유전자가위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치료제나 작물을 개발할 노하우를 가진 국내 업체도 소수에 불과하다.
◇"크리스퍼,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김 단장은 국내에서 유전자가위를 전향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크리스퍼를) 우리가 하지 않으면 남들이 다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크리스퍼를 주도함으로써 인류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그러면서 "국내 연구나 산업화 단계가 많이 뒤처진 것은 아니다"라면서 "인텔리아나 에디타스도 아직 본격적인 임상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퍼 시대를 주도하려면 정부, 대학, 연구소, 기업들의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규제를 재정비하고 대학과 연구소는 관련 기술을 개발해서 속도감있게 기술과 특허를 공유하며 기업은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 크리스퍼 특허와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해서 산업화하겠다는 게 김 단장의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유전자가위 특허를 우려한다. UC버클리, 툴젠, MIT 간의 크리스퍼 특허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특히 툴젠이 자금의 한계, 한국기업이라는 이유로 분쟁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김 단장은 "유전체교정사업단과 툴젠은 크리스퍼를 산업화하는 길목 길목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십 개의 특허를 출원했다"면서 "국내외 어느 기업도 이를 피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천 특허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2012년 버클리, 툴젠, MIT가 각각 출원한 원천특허가 무효화된다면 불확실성 해소로 툴젠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지난 3월 서울대 사표를 내고 서울대 화학부 교수 직함을 내려놨다.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유전자가위 연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
유전자가위를 통해 이루고픈 김 단장의 꿈은 뭘까.
"유전자 가위 기술이 지금까지 학술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을 가지고 아직 단 한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키지도 못했고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하나의 새로운 종자나 제품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실제로 구현해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고 우리의 식탁을 바꾸는 쪽으로 활용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