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은행장·각국 중앙은행장장관 등 모여…규모 작아도 정책변화 예고의 장 역할 시장 주목
지난주 전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은 미국 와이오밍 주의 작은 휴양지 잭슨 홀에 쏠렸다. 인구 1만여명인 이 작은 마을은 매년 8월이면 유명 경제학자와 중앙은행 관계자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올해에는 12개 미 연방은행장과 각국 중앙은행장, 경제 석학, 경제장관 등 총 126명이 이곳을 찾았다. 시장은 이들의 입에 주목했고, 잭슨 홀에서 나온 발언은 글로벌 증시는 물론 환율 채권, 원자재 시장이 출렁이게 만들었다.
◇‘낚시광’ 볼커 전 연준 의장, 흥행보증수표 역할= 잭슨 홀 미팅의 공식 명칭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1978년부터 캔자스시티 연은 주최로 열린 이 연례 회의는 원래 12개 지방 연방은행장들의 피서 겸 정책 세미나였다. 처음부터 잭슨 홀에서 열렸던 것도 아니었고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포럼도 아니었다. 포럼의 주최자였던 캔자스시티 연은은 해당 포럼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포럼이 되길 원했다. 이에 1982년 개최치를 잭슨 홀로 옮기고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가 참석하도록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오일 쇼크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 고금리 정책으로 ‘경제 소방수’ 역할을 했던 볼커가 참석한다면 흥행은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캔자스시티 측은 볼커가 평소 낚시광인 점을 파악해, 이곳에서의 송어 낚시를 권유하며 참석을 요청했고, 볼커도 초대에 응했다. 잭슨 홀은 원래 그랜드티톤국립공원과 잭슨 호수가 있어 피서지로도 그만이다. 한여름인 8월 시원한 자연을 배경삼아 경제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하니 포럼 참석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후 볼커는 정기적으로 잭슨홀 미팅에 참석했고 그의 등장 이후 유명 경제인사들도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말. 말. 말= 해를 거듭하면서 주요 인사들의 잭슨 홀 미팅 연설내용이 시장에 파급력을 미치기 시작하자 ‘중앙은행판 다보스포럼’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자연스럽게 잭슨 홀미팅으로 유명세를 얻은 인사도 생겼다. 2005년 잭슨 홀 미팅 당시 무명의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현재는 거품 경제 상태”라며 “비우량주택담보 대출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해 포럼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이후 그의 말은 현실이 됐고 라잔은 스타 경제학자로 부상했다. 그는 2013년에는 고국인 인도의 중앙은행장으로도 발탁됐다.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장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준 의장들이 정책변화를 시사하는 자리가 되는 관례가 생기기도 했다. 실제로 벤 버냉키, 앨런 그리스펀 등이 잭슨 홀 미팅을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자리로 삼았다. 지난해 9년 만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부담감에 참석하지 않았던 재닛 옐런 의장도 올해는 잭슨 홀 회의에 참석해 연내 금리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잭슨 홀 미팅에서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사는 옐런이 아니라 ‘넘버2’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라고 평가했다. 피셔 부의장은 지난 26일 “연내 2차례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잭슨 홀은 유난히 더 북적였다. 연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단체인 ‘페드 업(Fed Up)’ 회원들이 잭슨 홀에 모여 연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페드업 회원 39명의 호텔 예약이 사전공지 없이 취소돼 반대 세력의 입성을 저지하려는 조치가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잭슨 홀 미팅은 안티(anti) 다보스?= 유명 인사가 대거 모이고 작은 휴양지 마을에서 개최된다는 공통점 때문에 잭슨홀 미팅은 흔히 스위스 다보스 포럼과 비교된다. 하지만 잭슨 홀 미팅은 다보스에 비해 화려하지도,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다. 참석자가 2000명이 훌쩍 넘는 다보스 포럼에 비해 잭슨 홀 미팅은 150명 내외로 규모가 작다. 거액의 연회비 납부를 통해 참석할 수 있는 다보스와 달리 잭슨 홀 미팅 참가비는 1인당 1000달러다. 작은 시골마을이다 보니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 대도시와 달리 교통도 불편하다. 당연히 화려한 대형 호텔도 없다. 숙박시설이 많아 일부 객실은 TV도 없는 방도 있다고 한다. 참석자가 낸 참가비로 행사를 진행하는 탓에 흔히 국제 포럼에서 제공되는 화려한 코스요리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