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흡수 합병 검토 중..자금 확보로 신약개발 탄력 vs R&D 전략 개편 불가피
LG생명과학이 분사 이후 14년만에 모기업 흡수합병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룹 차원에서 왕성한 투자를 통해 의약품 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도다. 흡수 합병이 현실화할 경우 LG생명과학 입장에선 든든한 현금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반면 14년 동안 고집스럽게 진행한 연구개발(R&D) 투자 성과가 가시화하며 홀로서기에 간신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점에서 합병이 오히려 중장기 전략에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02년 (주)LG (옛 LGCI)의 생명과학사업부문이 분할돼 설립됐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화학은 LG생명과학의 합병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양사는 이달 중 이사회에서 합병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이 ㈜LG로부터 LG생명과학 지분을 인수한 후 장기적으로 LG화학과 LG생명과학의 주식 교환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LG는 생명과학의 주식 30.43%를 보유 중이다.
◇한미·삼성처럼...풍부한 현금 활용 R&D 투자 확대
LG화학과 LG생명과학 통합이 추진되는 표면적인 이유는 그룹 차원에서 의약품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LG화학이 보유한 풍부한 현금을 신약 개발에 투입해 LG생명과학을 글로벌 제약사로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상반기 기준 LG화학의 현금성자산은 2조2407억원으로 LG생명과학의 369억원보다 무려 61배 많다.
풍부한 자금은 R&D 투자에 든든한 후원군이 된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수출 대박’은 활발한 R&D 투자가 원동력을 제공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1년부터 5년간 5647억원을 R&D 분야에 투입했다.
삼성은 지난 2010년 바이오의약품을 신수종 사업으로 지목한 이후 총 1조1784억원을 투자했다. 왕성한 투자를 기반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 2 공장에 이어 3번째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6개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개발에 뛰어들었고 이미 2개 제품은 유럽에서 허가를 받았다.
LG생명과학 입장에선 LG화학의 현금을 활용하면 그동안 자금이 부족해 선택적으로 R&D 투자를 진행했던 한계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12년 임상2상시험을 완료한 신약 ‘베시포비어’의 판권을 일동제약에 넘겼는데 이유 중 하나가 자금력으로 지목됐다. 임상3상시험 단계에서 가장 큰 비용이 소요되는데, ‘베시포비어’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 다른 연구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LG생명과학은 삼성보다 먼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일본 제약사 모치다제약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LG생명과학이 만든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모치다가 일본에서 상업화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LG생명과학이 삼성과 같은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 독자적으로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진행하면서 개발 속도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엔브렐’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013년 7월 임상시험에 착수한 이후 2년 2개월만에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LG생명과학은 삼성보다 3년 빠른 2010년 5월 임상시험에 돌입하고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LG생명과학이 LG화학으로부터 넉넉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 다양한 신약 개발을 시도할 수 있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바이오의약품 사업은 더욱 적극적으로 두드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가에서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재훈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LG화학과 LG생명과학이 합병되면 LG생명과학은 풍부한 자금을 활용해 보다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 수 있고, 기존에 진행 중인 R&D의 시간도 단축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6일 LG생명과학의 주가는 전일 대비 5.1% 상승했다.
◇14년 성적표 나쁘지 않은데..‘투자=성공’ 불투명
이에 반해 LG생명과학의 LG화학 흡수합병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제기된다. LG생명과학의 성적표가 나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드림파마, 태평양제약 등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쓴 맛을 본 것과는 달리 LG생명과학은 대기업 계열 제약사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자체개발 신약 ‘제미글로’, 미용 필러 ‘이브아르’ 등이 성장의 주역이다. 이들 제품은 LG생명과학의 오랜 R&D 노력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장세로 평가된다.
올해 상반기 LG생명과학의 매출에서 상품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6%에 그친다. 상품매출은 재고자산을 구입해 가공하지 않고 일정 이윤만 붙여 판매되는 매출 형태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다국적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의약품으로 올리는 매출이 상품매출에 포함된다.
유한양행(71.9%), 녹십자(48.5%), 제일약품(68.4%) 등 경쟁사들이 ‘남의 제품’을 판매하며 외형을 확대했지만 LG생명과학은 자체 역량만으로 내실을 다진 셈이다. LG생명과학이 상반기 거둔 매출 중 42.4%는 해외 시장에서 기록했다.
오랫동안 공들인 R&D 성과도 가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기술로 처음 개발에 성공한 5가 액상혼합백신 ‘유펜타’는 지난 2월 세계에서 7번째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유펜타의 사전적격성평가(PQ)를 받았고 올 하반기 국제 입찰 시장을 두드린다. 유펜타는 5세 미만의 영유아에서 많이 발생하면서 치사율이 높은 5개 질병(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ㆍB형간염ㆍ뇌수막염)을 동시에 예방하는 혼합백신이다.
'제미글로'의 본격적인 해외 성과도 기대된다. 지난 2012년 국산신약 19호로 허가받은 제미글로는 지난해까지 사노피 등을 통해 105개국과 수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제미글로는 국내에서는 국산신약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다.
드림파마, CJ헬스케어, 태평양제약 등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이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돼 곤혹을 치른 반면 LG생명과학은 리베이트 관련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다.
정일재 사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 경영관리팀장, LG텔레콤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정일재 사장은 지난 2010년 LG생명과학의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체질개선에 주력했다.
‘비즈니스 전략가’로 평가받는 정 사장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하자”는 경영철학으로 기존의 R&D 전략을 전면 개편했다. 대사질환치료제를 비롯해 바이오의약품·백신 등의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자는 전략을 실천했다.
정 사장은 경쟁사인 녹십자를 직접 찾아가 R&D·영업 제휴를 논의할 정도로 회사 체질개선에 공을 들였다. 상업화 막바지 단계를 앞둔 신약 판권을 일동제약에 넘겨준 것도 정 사장의 과감한 판단에서 나왔다.
정 사장이 조타수를 맡은지 5년 만에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내는 시점에서 합병이라는 대변화가 발생하면 기존에 구축한 R&D 전략도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약 개발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와 전략이 동반돼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조직 변화로 기존에 구축 전략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LG생명과학의 흡수 합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중 하나는 의약품 산업 특성상 활발한 투자가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LG생명과학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국내제약사 중 가장 많은 비용을 R&D에 투입한 업체 중 하나다.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매출액의 19.6%인 6739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입했다. 2000년대 초반 적자를 기록할 당시에도 매출액의 20% 이상을 R&D에 썼다.
LG화학이 그룹 의지대로 장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갈지도 미지수다. 삼성은 당초 바이오의약품 사업에 2020년까지 2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절반 수준만 집행하고 투자를 중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본격적인 상업적 성공 시험대에 올랐을 뿐 아직 성공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LG화학의 6일 주가는 전일 대비 5.81% 하락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약품 사업은 단순히 투자를 많이 한다고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안목이 동반돼야 하는데 합병에 따른 갑작스러운 조직 변화로 기존에 완성한 R&D 전략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