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이기봉 부사장 인터뷰 “직장폐쇄 내홍 이후 매출 급감… 시장점유율 30% 떨어져”
현대자동차 파업을 비롯해 산업계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노사분규로 신음하고 있는 시기다. 노조의 파업은 조선업 구조조정에 따른 조선 3사 파업을 비롯해 철도노조, 화물연대, 공공부문 등 산업계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 들어 9월 현재 근로손실수가 105만9000일을 기록하고 있어 종전 최대치였던 2000년의 189만3000일을 넘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유성기업의 이기봉 부사장이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에 엔진 핵심부품을 납품하는 강소기업이었지만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노사갈등으로 영업활동이 크게 위축된 곳이다. 이투데이는 이 부사장을 만나 그간 유성기업 사태의 경과를 들어봤다. 또한 노사 간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 기업으로서 최근 확산되는 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함께 들어봤다.
이 부사장이 직접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사장은 유성기업의 지난 노사분규에 대해 “‘나쁜 회사’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 뒤 5년간 회사는 그야말로 난도질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최근 현대차 파업과 관련해서도 “부품사로서 유성기업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면서 “최근 전 산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파업으로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차 파업에 따른 유성기업의 피해는?
특히 이번 현대차 파업은 우리에게도 직접 관계가 있다. 손실이 막대하지만 부품사로서는 달리 손쓸 도리가 없다. 현대차가 파업을 하면 부품사는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부품사가 가동을 중단하면 원청업체에 이행금을 물어야 하지만 그 반대는 없다. 완성차 업체가 파업을 한다고 해서 부품사의 손실을 보전해 주지는 않는다. 현대차가 파업을 할 때마다 문 닫고 도산하는 기업이 생길 뿐이다.
△최근 산업 전반에 확산되는 노조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최근에는 각 노조가 경쟁을 하듯 조직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과 일자리는 점점 악화된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은 이미 해외생산 대수가 국내생산 대수를 앞질렀다. 그나마 자동차는 이 정도지만 조선산업은 어떻게 됐나. 미국, 유럽, 일본의 노동조합이 우리보다 나쁜 조건에서도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다. 노사 간 협상과 협의라는 것이 목소리를 높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주변의 경영, 임금, 경제 등 지표를 두루 갖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조가 경쟁적으로 조직력을 과시하기보다 진지하게 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유성기업을 모르는 이도 많다. 먼저 유성기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유성기업은 1959년 창립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발전과 함께해 온 기업이다. 현대차와 국산화 엔진 개발을 함께 시작했다. 포니에 들어간 엔진부품부터 첫 독자설계 엔진인 알파엔진까지 개발에 참여했다. 기술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선도기업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는 처음으로 해외수출 판로를 개척했고, 품질관리 분야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
△유성기업에 노사분규가 언제부터, 왜 발생했나?
내가 직원으로 일할 때만 해도 유성기업은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회사 설립 이듬해인 1960년도에 노조가 결성될 만큼 노동친화적 기업문화가 있던 곳이었다. 논란이 된 2011년 직장폐쇄의 발단은 2009년에 노조가 요구했던 ‘주간연속 2교대’였다. 낮에만 근무하도록 시간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당초 준비위원회를 함께 구성하고 도입 시기를 논의해 보자고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곧바로 시행을 요구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요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노조의 요구사항은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근로시간 조정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었나?
언뜻 들으면 상식적으로 당연한 요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붙였다. 우선 하루 20시간의 전체 근로시간을 15시간으로 줄이되 총액임금 저하는 없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심야수당을 포함한 총액을 달라는 것이었다. 신규채용을 하지 말라고도 했다. 단순히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경영제반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노조는 단위시간당 생산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덧붙였다. 공장 라인 가동이 5시간 줄어들면 생산량이 어림잡아 25% 줄어든다. 유성기업에서 생산하는 피스톤링은 현대자동차와 상호독점 관계에 있는 부품이었다. 제때 납품되지 않으면 현대차 라인이 멈추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수백억 원의 지체이행금을 부과받게 된다. 회사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른 해결책은 없었나?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결정한 까닭은?
이전까지는 노조가 파업을 하면 관리자들이 현장에 들어가 대신 작업을 했다. 노조가 눈치 정도는 줬지만 작업을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2년에는 관리자들이 작업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았다. 야간에 숨어든 관리자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폭력도 난무했다. 직장폐쇄 당일 노조는 완력으로 모든 관리자를 쫓아내고 기계 스위치를 내렸다. 기계에 쇠막대기를 집어넣고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직장폐쇄 이후 사측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컨설팅기업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있었다거나 노조원에 대한 고소·고발, 징계를 남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 직장폐쇄는 컨설팅회사 ‘창조’가 아니라 당시 공장장이었던 내가 결정했다. 노조는 운동장에서 막걸리 파티를 하며 관리자들의 작업을 막고 있었다. 공장장으로서는 고객사를 생각해야 했다. 생산라인이 끊어질 상황이었다. 공장장이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라인이 끊어졌다면 뭐라고 생각하겠나 싶었다. 그런 사람의 어딜 믿고 앞으로 일을 하겠나. 일단 라인을 연결해 보고자 직장폐쇄를 했다. 이후 300명가량의 노조원이 몰려와 공장을 점거했고 일주일 후 공권력이 투입됐다.
△사측이 노조에 대해 ‘가학적 노무관리’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일부 언론에서 노조 측의 표현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가학적 노무관리를 한다는 주된 근거는 고소·고발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만 보면 맞는 얘기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고소·고발 대부분은 회사가 아닌 폭력행위를 당한 직원 개인이 했다. 검찰에서 벌금형 이상을 구형한 것만 300건가량이다. 노조 측에서 무고죄로 대응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고발 내용이 정당하다는 얘기다.
△사측이 징계를 남발하고 어용노조와 차별대우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징계가 많았던 것은 맞지만 징계사유가 부당한 경우는 없다. 사내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이 많았기에 회사가 징계를 결정한 건수도 많아진 것이다. 징계사유나 징계수위와 관련한 소송에서도 모두 회사 측이 승소했다. 또 차별적 대우를 한다는 부분도 해명하고 싶다. 금속노조 지회 소속 직원의 연평균 급여는 6483만 원이고, 정상근무를 한 제2노조원의 급여는 7683만 원이다. 파업과 지각, 조퇴, 결근으로 근무시간이 달랐으니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몇 년간의 노사분규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가장 큰 피해는 이미지다. 대중에게 회사에 대한 인식이 ‘노동을 탄압하는 나쁜 기업’으로 박혀 버렸다. 고객사에도 부담이 되고 있어서 신규 수주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주력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70%에서 현재 39%로 줄었고 전체적으로 매출이 20%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의 시장점유율은 30%에서 61%로 올라갔다. 회사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도 거리에서 투쟁 중인 노조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쟁의라는 것도 회사의 상생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면 바람직한 면이 있다. 하지만 결국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까지 간다면 이 같은 노동쟁의가 취지에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 노조활동이라는 것도 결국 다같이 최선을 다해서 생산활동을 한 뒤에 부가가치를 갖고 복지를 증진하는 활동이 돼야 한다. 이것이 어떤 조직화된 힘을 갖고 정치적인 목적의 활동이 돼서는 안 된다. 회사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는다면 현재 700명 직원, 3000명에 달하는 식솔이 어디로 가겠는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기봉 유성기업 부사장은… 47년 근속 엔지니어 경영인
이기봉 유성기업 부사장은 유성기업에서만 일해온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이다. 20살이었던 1970년 유성기업에 입사한 뒤 현재까지 47년째 근무하고 있다. 1950년생으로 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부사장은 엔지니어 사원으로 입사해 임원까지 승진한 경우로, 유성기업 정도의 중견기업체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다. 1995년 이사로 승진한 뒤 상무, 전무 등을 거쳐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원 시절, 기술력이 없어 선진국에 설움을 당한 기억이 있는 그는 ‘기업의 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업무신조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