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은, 잘 알다시피 마니아형(型)이어서는 수지가 안 맞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외화 수입 일을 하게 된 사람치고 대부분 망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영화 비즈니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몰라야 한다. 그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영화를 잘 알든 모르든 대중의 마음, 그 속내를 잡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술영화든, 독특한 상업영화든 시절과 시대 분위기를 잘 읽어 내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근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누구처럼 신기(神氣)가 있어서 점괘로 척척 맞힌다고 하지 않는 한에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자기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무속인을 찾기도 한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그러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교회를 다니든 절을 다니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어서 구복(求福)을 할 수 있다면 전통 신앙의 제의(祭儀)를 굳이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인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그때뿐이다. 그 점성술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구복은 결국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대체재(代替財)적 성격의 심리에 불과한 것이니까. 영화인들이 그것보다 신격화하는 것은 대중의 마음이다. 그게 민심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천심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전설적 흥행 감독 하워드 호크스(1896~1977, ‘신사는 금발을 좋아 해’·‘빅 슬립’)는 누군가가 “좋은 영화란 어떤 것인가”라고 묻자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좋은 장면이 세 개 정도 있는 영화?” 평론가 등등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이 텍스트가 어떻다는 둥, 미장센이 어떻다는 둥 할 때 호크스는 이렇게 툭 던지고 있는 셈이다. 복잡할 것 없다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깃거리나 볼거리가 있으면 되는 거라고. 그것도 영화 전편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세 장면 정도만 있어도 되는 거라고. 대중 정서란 게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 요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징징대는 적이 별로 없다고. 그런데 그것도 안 됐다고 생각하면 혹은 그러는 척 거짓말을 일삼으면 가차없이 외면하는 게 대중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영화 대중이 이럴진대 소위 말하는 ‘민심 = 천심’이라는 것은 어떻겠는가. 결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을 것이다.
최근 1개월여를 전후해 극장가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영화가 두 편 있다. 다큐멘터리, 최승호 감독의 ‘자백’과 전인환 감독의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이다. 영화 제작자나 배급업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위정자(爲政者)들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자백’은 2012년 국정원이 자행한 탈북자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을 그렸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도에 부산에서 당시 민주당 공천으로 16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었던 이야기를 회고하는 작품이다. ‘자백’은 11월 14일 현재 12만7215명을,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2만8339명의 관객을 모았다. 극영화로 치면 2백 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셈이 된다. 두 작품 모두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진실’ 그리고 ‘지도자’다. 합하면 진실된 지도자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종종 영화를 봐야 한다. 영화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영화를 통해 시대 정서를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 연애의 상상력이 부족하고 섹스의 상상력이 왜곡된 사람들이 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극우 이데올로기에 빠지거나 반대로 좌파 맹동주의자가 된다. 이상한 종교에 빠지거나 불편한 윤리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변 사람들을 달달 볶는다.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 최근에 본 영화가 몇 편쯤 되는지, 어떤 영화들을 봤는지를 중요한 판단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는 미처 그러지를 못했다. 그건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름을 밝혀서 좀 그렇지만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 같은 사람은 아무리 봐도 1년에 영화 한 편을 볼까 말까 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