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부 차장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1.28~1895.8.5)는 카를 마르크스와 더불어 공산주의를 창시한 사람이다. 19세기 후반부터 100년 넘게 공산주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는 냉전시대 중국과 옛소련, 동유럽 등 붉은 진영을 지배했던 이념이었다. 학문적으로도 철학과 경제학, 사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공동으로 과학적 사회주의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1848년에는 마르크스와 함께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 또한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마르크스 후원자로서의 이미지다. 자본가의 적을 자처한 엥겔스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서 부자인 상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는 자신도 영국에서 방직공장을 경영할 정도로 큰 부자였다. 트리스트럼 헌트의 ‘엥겔스 평전’에는 여우 사냥과 고급 샴페인 등을 즐겼던 부자 엥겔스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자본가로서 공장 근로자의 열악한 환경을 직접 목격한 엥겔스였기에 마르크스의 사상에 동조하고 기꺼이 후원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삶이 궁핍해 노동자들의 편에 섰을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엥겔스라는 든든한 물주를 얻어서 풍족하게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마르크스는 항상 엥겔스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는 그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가정부를 두고 딸들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는 등 사치스럽게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엥겔스는 평생 마르크스의 사상을 믿고 그의 곁을 지켰다. 두 살 많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뒤 ‘자본론’ 2, 3권을 직접 정리해 출판했다. 엥겔스도 박학다식했으며 20개 이상의 외국어를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