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소원해진 러시아와 달리 존재감 늘려온 중국에 기회 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반세기 만에 간신히 정상화 절차를 밟는 양국 관계가 다시 급랭 될 조짐이 감지되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중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최근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으로서는 갑자기 식어버린 양국 화해 분위기의 틈새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내 가장 공을 들였던 사업 중 하나이자 그의 대표적 외교 유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2월 53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선언하고 올해 3월에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 땅을 밟았다. 국교정상화가 선언된 지 불교 몇년 사이 쿠바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은 빠르게 늘어났다.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 보내는 현금은 약 34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쿠바의 연간 수출 총액보다 많은 것이며 2010년 19억2000만 달러에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매년 쿠바가 사들이는 TV, 의류와 같은 공산품 규모도 35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금수(禁輸)조치가 남아있어 양국 무역량은 극히 적은 편이다. 쿠바 전체 수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4%에 불과하다. 만약 금수조치가 해제된다면 양국의 교역량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금수조치 해제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쿠바가 쿠바 국민과 쿠바계 미국인, 미국을 위한 더 나은 협상을 할 의지가 없다면 다시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주장해 해빙 무드였던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WSJ는 트럼프의 이러한 주장이 현실화하면 우방국이었으나 그간 관계가 소원해진 러시아와 달리 최근 쿠바 내에서 존재감을 키워온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메우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쿠바의 2대 교역국으로 급부상했다. 쿠바는 남미 국가로는 처음으로 지난 1960년에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쿠바의 교역액은 전년 대비 59% 급증한 22억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1~2분기 교역액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해 11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기업들도 공격적으로 쿠바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 버스회사 정저우 위퉁은 2005년 이후 쿠바에 5800대의 버스를 수출했으며 쿠바의 시내버스와 관광버스의 90% 이상은 정저우 위퉁 제품이다. 중국의 영향력은 쿠바 통신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역시 쿠바 인터넷망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화웨이 장비를 기반으로 인터넷망을 구축해 주파수 대역의 국제기준을 중국이 쓰는 아시아 태평양 기준을 따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014년 쿠바를 찾아 델 카스트로를 만나고, 리커창 총리가 지난 9월 쿠바를 방문해 재정·통신·환경보호 등 다양한 협정을 체결했다. 반면 전통 우방국이었던 러시아는 저유가와 경기침체로 인한 자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느라 쿠바와의 경제적 유대 강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크리스 하머 미국 전쟁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는 이미 아웃”이라며 “러시아는 과거 쿠바에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확실히 이로 인해 재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