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피로는 회복하는 게 아니올시다

입력 2017-01-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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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나른하고 피곤한 걸까? 밤에는 1~2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회사에 출근하면 그때부터 졸리고, 낮이든 밤이든 술 마시면 취하고(!), 설단(舌端)현상이라나 뭐라나, 아는 말인데도 혀끝에서만 맴돌다 누군가 작은 힌트라도 줘야 기억나고…이거 뭔가 크게 잘못돼 가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그거를 어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아 이거 내가 잘못된 건가 그렇게 할 일은 안 하는데 그런 거를 일일이 이런 병이 있으니까 이렇게 치료했지, 이건 이런 식으로 했지,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 것 아닌가, (중략) 그리고 또 피곤해가지고, 특히 순방하고 이럴 때는 시차 적응을 못 하면서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기 때문에 나중에 굉장히 힘들 때가 있어요.”

원래 박 대통령의 말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야 알아들을 수 있다지만 골자는 심신이 피곤하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해외 순방도 하지 않았고 시차 적응도 필요 없는데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결국 박 대통령의 다음 말에서 답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피곤하니까 또 다음 날 일찍 일을 해야 되니까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영양주사도 놔줄 수가 있는 건데 그걸 큰 죄가 되는 것같이 한다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뭐냐, 제가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다 기록을 해가지고, 주사를 무슨 영양주사나 너무 피곤해서 이렇게 할 때에도 그건 의사가 알아서 처방하는 거지 거기에 뭐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환자가 알겠습니까?”

맞다. 나는 영양주사는 맞지 않았지만 피로가 바로 회복되곤 했기 때문에 계속 피로한 것이다. 도대체 피로를 왜 회복하나? 해소하거나 제거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카스가 나온 이후 한결같고 줄기차게 피로를 회복하고 있다.

말도 안 돼. 또 혼자서 지적질을 하다가 피로 회복을 영어로는 뭐라 하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fatigue recovery’였다. 제대로 된 영어로는 ‘fatigue solution’이나 ‘fatigue settlement’일 텐데 우리말 표현이 틀리니 번역도 엉터리일 수밖에. 물리학에서는 고체 재료가 작은 힘을 반복해서 받는 바람에 틈, 균열이 생겨 마침내 파괴되는 현상이 피로다. 천자문에는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는 심동신피(心動身疲)가 나온다.

최순실은 최순실대로 국정 농단을 하느라 피로가 누적됐던지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라고 하더니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에 ‘심신이 회폐하다’고 썼다.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피폐를 말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훼손돼 없어지거나 기능을 하지 못하는 훼폐(毁廢)인가?(이 말을 쓰려다가 잠깐 잘못 표기한 거라면 언어 수준이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에이 시시해. 겨우 ‘피로 회복’ 이런 거나 시비 걸어 글을 쓰다니. 그런데 이 글을 쓰다가 피마불외편추(疲馬不畏鞭?)라는 말을 알게 됐다. 지친 말은 채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궁지에 빠지면 엄벌을 각오하고라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라니 아아, 절묘하구나. 박 대통령은 역시 지친 말인가 보다.

우리는 지금 박 대통령 때문에 피로가 심하다. ‘대통령 피로현상’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듯이 피로는 피로할 때 바로 해소해야 한다. 회복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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