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평균 나이 65세 시니어 인턴 3인방의 도전기를 그린 KBS 특집다큐멘터리 <시니어 도전기, 인턴(人turn)>이 방송됐다(12·19일 2부작). 새로운 세상으로 첫걸음마를 내딛는 시니어 인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중·장년들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었다.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이미 일어서는 법을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또다시 현역으로 발돋움하는 그들의 레이스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바통을 건네 보았다.
화려한 인생 2막의 꿈을 안고 희망촌에 문을 두드린 권오순(67)·김홍관(61)·정환기(67)씨. 그들은 재취업 전문가들의 심층 면접을 통해 새로운 직장인의 길을 모색한다. 각자의 성향과 장·단점에 따라 인턴 기회를 얻고, 다시 설레는 첫 출근길에 오른다.
다시 첫 출근, 첫 번째 시련
은퇴 3개월 차 권오순씨는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의 주역이다. 건설업 분야에서 활약했던 권씨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도시가스 검침원으로 일했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아버지였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살균·소독·탈취제 영업.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첫 출근을 하지만, 이내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만다. 처음 들어보는 화학 용어들에 과부하가 걸린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사로부터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30년 동안 은행원 외길 인생을 살아온 김홍관씨는 시니어 매거진의 인턴 기자로 발령받았다. 평사원에서 임원까지 지낸 조직생활 베테랑이지만 기자라는 전문직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설렘 반 우려 반으로 첫 출근 도장을 찍은 김씨. 난생처음 겪어보는 여자 상사에 알 수 없는 전문용어까지,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직업군인으로 17년간 일하며 다부지게 살아온 정환기씨. 은퇴 5년 차인 정씨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까지 따며 ‘요리 강사’의 꿈을 꾼다.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요리학원에서 강사 보조를 맡았다. 야무진 손끝으로 강의실을 누비며 궂은일을 척척 해내는가 싶더니, 곧 체력의 한계가 찾아온다. 그동안 자격증도 따고 잘 준비했노라 자신했는데 요리 분야의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이것저것 실수투성이다.
‘경험’이란 양날의 검
직장과 업무는 모두 다르지만 세 사람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가 있었다. 지난 30여 년의 경험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동안 다져온 사고방식이나 업무체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자신감은 도리어 안일함으로 평가받고, ‘이게 맞는데’라는 확신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러나 숱한 문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노련미는 그윽하게 빛났다. 상사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와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고 극복하는 모습 등에서 사회 초년생과는 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냉혹한 현실 앞에 세 사람의 인턴생활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슬아슬하기도 했지만, 굳은 심지와 패기로 쉬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 <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홍관 인턴 기자의 제2직업 ‘人turn’ 인터뷰
"30년짜리 교양수업 마치고, 이제부터 전공수업 시작!"
방송을 통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인턴 기자가 된 김홍관씨. 심층면접 당시 평소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전거 여행 이야기와 사진을 올렸던 것이 역량 평가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기사 작성뿐만 아니라 취재, 인터뷰, 사진 촬영 등에 도전하며 차곡차곡 기자로서의 새로운 경험을 채워갔다.
Q ‘인턴 기자’가 됐을 때 각오와 심정
해보지 않았던 분야라 심적인 중압감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새로운 일을 맡고 수행하는 데 익숙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려고 했다. 기자라면 기사 쓰는 일과 사진 찍는 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처음 제안이 있었을 땐 사진을 찍었었기 때문에 사진기자 일은 어느 정도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업무를 접해보니 기사 작성과 사진 촬영 모두를 해야 해서 일에 부담을 많이 느꼈다.
Q 막내로서(?)의 첫 출근 소감
이전 직장에서도 2~3년마다 근무지나 업무가 바뀌는 생활을 해서 첫 출근에 대한 부담감은 적었다. 그러나 경험해보지 않은 업무를 해야 하는 새내기 인턴기자라 좌충우돌하면서 배울 것이 많기에 일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Q 우여곡절 끝에 첫 기사가 나갔을 때
어느 조직이나 처음이 힘든 것은 그 조직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기사를 작성했을 땐 용어도 생소하고 시스템도 익숙하지 않아 어리둥절했는데, 한 꼭지를 완성하고 기사화됐을 땐 한 매체에 내 이름이 올라 있는 것 자체가 감동스러웠다.
Q 나이 어린 선배들과의 호흡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면 나이는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업무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배들에게 배울 것들이 많았다. 기자는 일종의 전문직이기 때문에 다들 사명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업무에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Q 어린 인턴보다 낫다 생각하는 것
기자로서 막내라는 것은 업무를 모른다는 것이라 생각하고, 대학과정으로 비유하면 교양과정은 이수하고 전공과목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업무 이외의 생활은 편안하고 자신 있었다. 특히 시니어를 취재할 때는 비슷한 연배로서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 일하기 편안했다.
Q 인턴에 도전하는 동년배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점
익숙지 않은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빨리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Q 인턴을 마치고 난 감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 다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잠시나마 기자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 자전거 여행 취재를 떠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