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동북아 3국 모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새해 첫 달을 골라 일제히 벌인 이 동북아의 에어쇼를 과연 무엇으로 풀이해야 합당할까? 가장 근사(近似)한 답은 아무래도 ‘새해’라는 말에서 찾는 것이 순리일 성싶습니다.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역대상 20장 1절)라는 성구(聖句)야말로 여기에 가장 합당한 해명이 될 것 같습니다. 3000년 전 팔레스타인 여러 왕들이 습관적으로 전쟁을 벌였듯, 그 악습은 지금도 변하지 않은 듯싶습니다.
더구나 엊그제(20일) 공식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올해 집권 2기를 맞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재출범이 때를 같이하고 있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G2’, 두 나라 왕들의 새해 첫 유혹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대만 전투기의 출격으로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았던 것은 대만해협을 통과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 항모전단의 진항을 견제하거나 겁을 주려는 출격이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근인(近因)에 관해서는 지난해 말 이 난을 통해 밝힌 ‘세계는 지금’을 아래 재록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이끄는 항모전단이 23일 한국의 서해 해상에서 함대공 미사일을 쏘아대고 함재기 이착륙 훈련을 한 데 이어, 이틀 후 일본 오키나와 본섬과 미야코(宮古) 섬 사이 미야코 해협을 통과, 서태평양 쪽으로 뻗어나간 것입니다.”(2016년 12월 28일자·미국은 왜 아시아를 잃고 있는가)
한·일 두 나라 공군기의 출격 역시 랴오닝함의 태평양 진출이 몰고 온 후유증입니다. 랴오닝함이 태평양 진출을 마친 후 모항으로 귀항 중, 중국 본토에서 출격한 중국 군용기들이 한국방공식별구역과 일본방공식별구역을 거의 동시에, 그것도 의도적으로 범접한 데 대한 한·일 두 나라의 요격 출진이었습니다. NHK에 따르면 대한해협과 동해, 동중국해 상공 등 일본방공식별구역을 범한 중국 군용기들은 ‘홍(轟·H)-6’ 폭격기 6대, ‘윈(雲·Y)-8’ 조기경보기 1대, ‘윈-9’ 정찰기 1대 등 모두 8대입니다.
동북아 3국이 일제히 벌인 이번 에어쇼의 하이라이트는 중국 랴오닝 항모군단의 대만해협 통과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 관해 뉴욕타임스의 베이징 특파원 마이클 포시즈와 홍콩 특파원 크리스 버클리가 송고한 기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태평양 원지 훈련을 마친 후 북향(北向)하던 랴오닝 항모군단은 대만해협에 진입할 무렵, 중국 본토 쪽인 해협 중앙선의 좌안(左岸)을 의도적으로 택해 조심스럽게 귀항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색은, 중국 측의 이런 조심성에 상응할 만큼 미국 측 반응 역시 조심 일색이었다는 점입니다. 예측 불허의 3국 에어쇼로 동북아 파고가 거셌던 당일, 미 국무부 마크 토너 대변인의 답변은 그 조심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랴오닝 항모의 대만해협 통과에 대해 미국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토너 대변인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아무런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그 해역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자유롭게 다닐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곳은 국제수역(International Waters)이 아닌가. 국제수역의 자유 통과는 국제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미국의 이런 조심성은 중국 측에 다시 전달된 듯,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장 조리(차관) 역시 대만해협이 국제수역임을 강조, 랴오닝 항모의 해협 통과가 양안(兩岸)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고 역설했습니다.
대만 측의 반응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랴오닝 항모의 해협 통과에 전투기를 발진시켜 중국 측을 견제·위협했지만, 대만 시민들에게는 가급적 평정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랴오닝 항모가 만약 대만 측에 가까운 해협의 우안(右岸)을 택해 북진했거나, 해협 통과 당시 함상의 탑재기들을 격납고에 넣지 않고, 만에 하나 작전을 벌였던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할 뻔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당시 니카라과를 방문 중이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본국과의 두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로 랴오닝 항모군단의 해협 통과를 낱낱이 체크, 대만 전투기의 출격을 국제 뉴스화하도록 지시하는 등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에 맞춰 총통 취임 반년 동안 은근히 추진해온 ‘두 개의 중국’을 구사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랴오닝 항모전단의 이번 출진은 한편으로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두 개의 중국’을,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 호응하는 눈치를 보여온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한 상징적 경고로 보는 것이 상하이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해양전문가 니 레시옹(倪樂雄) 박사의 진단입니다.
이번 에어쇼 기간 중 중국 공군기들의 동해 및 동중국해 상공 출현에 관해 레시옹 교수가 내린 여러 진단 가운데, 특히 다음 대목은 주목할 만합니다. “중국의 군사력이 약세였을 때 일본은 이 두 해역을 뒷마당으로 여겼다. 그 일본에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이 옳을 성싶다. 다음 번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전장은 당신네 일본이나 미국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런 지적이 단순한 진단 차원을 넘어 경고로까지 들리는 건 다음 대목에서 더욱 완연합니다. “그 결정은 우리가 할 것이다. 정색으로 말하건대, 대만이나 남중국해에 관해 더는 이러쿵저러쿵 참견하지 말라!”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번 에어쇼와 관련해 미·중 둘 다 조심성으로 일관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반대라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랴오닝 말고도 두 번째 항모를 연초에 진수할 계획이고, 미국 역시 열한 번째이자 역대 최대 규모의 핵 항모 제럴드 포드 호를 연내 취역할 예정입니다.
남중국해상에 집중돼온 미·중 갈등이 동중국해를 거쳐 결국 한반도로 북상 중이라는 불길한 뉴스로, 반년가량 써온 ‘세계는 지금’의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