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보틱스’ 지주회사로 설립… 정기선 후계작업 본궤도 진입 관측
현대중공업그룹이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 기치를 앞세우며 지주사 체계 전환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단순 분할에 그치지 않고 향후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히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전무 중심의 후계 작업이 본궤도에 진입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군산조선소 잠정 폐쇄 결정 등 심각한 조선 사업 위기 상황에서 경쟁력 회복을 제쳐두고, 경영권 승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로봇ㆍ자동화 사업 부문인 현대로보틱스(가칭)를 분사해 공정거래법상 사업 지주회사로 설립한다. 재계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계열사 독립 경영과 오너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자사주의 마법’으로 불리는 의결권 분할 때문이다.
조선ㆍ해양·플랜트ㆍ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로봇ㆍ자동화는 정 이사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인적분할이 이뤄질 예정이다. 인적분할되는 계열사 4곳의 자기주식을 모두 확보하게되면 사실상의 지주회사 지위에 서게 된다. 정 이사장이 현대로보틱스와 지분 교환을 단행할 시 현재 10.15%에 불과한 지분율은 40%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오너가 입장에선 세금을 내기 위해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안정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문제는 지주사 전환 이후다. 정 이사장은 인적분할로 생긴 ‘현대로보틱스 → 현대중공업 → 현대삼호중공업 → 현대미포조선 → 현대로보틱스’로 이어지는 신규 순환출자를 6개월 이내에 해소해야 한다. 또 기존 존재했던 순환출자 고리도 풀어야 한다.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써야 할 시기에 오너 승계를 위해 대주주와 계열사 간 지분 스와프 등에 그룹의 온 역량을 집중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은 대주주인 정 이사장이 정 전무로 지분을 승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 전무의 지분은 617주로 사실상 미미한 만큼,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선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한다. 승계 재원 마련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제민주화 법안을 대거 쏟아낸 것은 현대중공업의 지주사 전환을 통한 승계 플랜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개정안은 인적분할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꾀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