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제딜레마 흔드는 대선정국

입력 2007-11-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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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적 한국 민주정치, '실용주의' 기준 주춧돌 다시 놔야 =

바야흐르 대선정국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정파간 경쟁흐름은 여야권을 망라, 민의(民意)와는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고, 이런 정쟁성 '대권경쟁' 흐름들이 곳곳에 문제를 이미 안고 있는 한국경제의 진로에도 적지않은 '역기능'으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들이 결코 심상칠 않다.

한 경제단체가 최근 발간한 ‘208개 경제•무역•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 2007’은 한국경제의 글로벌 현 좌표와 지향하는 방향을 선명히 보여준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8874억달러로 세계 13위, 교역규모는 6349억달러로 세계 12위였다. 1위로 세계를 리드하는 조선•반도체 분야나 정보화지수 3위가 말해주는 정보통신 강국의 이미지는 일단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실속을 들여다보면 그런 자부심은 금방 무색해진다. 소비자물가와 실업률을 감안한 경제고통지수, 아파트 임대료와 서울의 도시생계비는 모두 3위이고, 사교육비 부담은 2위다. 여느 나라에 비해 국민이 힘겹게 가계를 꾸려가고 있는 한국임을 세계 2, 3위라는 그늘진 순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삶의 질 지수는 GDP 순위의 3배 가까운 38위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외국자본이 한국을 등지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 자금 중 83억 달러(7조6000억 원)가 지난 2년 동안에 철수했다. 재작년에 3조 원, 작년엔 이보다 53% 많은 4조6000억 원이 빠져나갔다. 2001년부터 4년간 연평균 1조 원꼴에 비해 현 정부 중반 이후 급속해진 외자 이탈이다. KOTRA(한국무역진흥공사)가 40개 철수 기업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은 실적 부진, 노무관리 문제, 경쟁 격화, 임금 상승, 투자 인센티브 축소 같은 이유를 꼽았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가 매긴 투자 여건 순위에서 한국이 창업환경 116위, 노동유연성 110위로 밀려난 사실과도 맥이 닿는다.

한마디로 국내에 들어왔던 외자가 달아나고 새로운 외자도 덜 들어오면 경제 활력도,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 3분기(7∼9월)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는 2분기(4∼6월)보다 5.8% 감소해 성장력 확충과 고용 창출이 어려움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현 좌표를 총체적으로 이끌고 가야할 정치권의 사정은 과연 어떤가. 여권내 끊없는 정쟁성 이합집산, 그리고 행정상의 무책임성도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야당 까지도 진지한 '정책감정'은 뒤로 밀린채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내분이 국가적으로 '큰 낭비'로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다. 경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후보와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이 융합하지 못한 채 단합이 안되는 이유를 놓고 네탓 공방을 벌이며 적대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일쑤다.

특히 노대통령의 임기말을 맞아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무책임'에 가까운 자세는 크게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으로 보인다. 현직 국세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피내사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현직 국세청장의 검찰 소환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생긴 것이다. 국세청장은 국세행정의 최고 집행기관이고,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현상은 변양균 - 신정아 사건에 이어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 사건의 연장선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와 청와대 인사 시스템 미비로 임기 말 노무현 정권의 모럴 해저드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권에서나 ‘부적절한 권력이 행사되는’ 스캔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과거 정권에도 대통령 자신이나 측근이 연루된 비리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대응 방법이 과거 정권과 달라서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는 양상이다. 변 전 실장의 비호 의혹과 청와대 의전비서관인 정윤재 게이트가 불거지던 지난 9월 노 대통령은 진실 확인보다는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며 덮기에 급급한 듯한 인상을 줬다.

노 대통령은 측근 비리가 터질 때마다 진실 규명보다는 측근을 감싸는 '가족주의 행태'를 보여온 인상이 짙고, 이런 식의 이른바 '온정주의' 성향 때문에 측근의 비리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따라서 정윤재 게이트와 관련해 '경제경찰' 역할을 해야 할 국세청장이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6000만원을 상납받았다는 혐의가 드러나는 등 현 정권의 도덕적 타락은 할 말을 잃게 하고 있다. 국민을 선도 감시해야 할 여야 곳곳의 요충지에서 이런 폐습들이 돌출빈도가 높아가고만 있으니 대선정국을 맞아 정작 문제의 핵심인 '정책'은 실종되고, '정쟁'만 난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민의는 '실용적 국익', 대선정국 양상은 '정쟁'

그렇지만 '민의(民意)'는 분명하다. 올해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실용주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중앙일간지가 창간 기념으로 두차례 실시한 정치와 정책여론조사에서 주관적 이념성향 평가와 10개 정책지표 문항에 대한 입장을 통계분석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었다. 후보 선택에선 보수, 진보의 구분이 역시 뚜렷한 편이었지만, 정책 선택은 지지후보나 이념에 별로 구속받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경영의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경제•한•미자유무역협정(FTA)•교육정책등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 조사에서는 ‘감세론’(48.3%)과 ‘증세론’(50.0%)이 팽팽한 가운데 이념별로는 4~5%안팎의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 또 ‘금산분리 완화 반대’(60.9%)가 ‘찬성’(31.6%)보다 두배 가까이 됐고, 반대는 ‘보수’(61.5%), ‘진보’(61.2%) 모두 높았다. 통상적으로 금산분리 완화는 보수진영의 대표적 논리중 하나였지만 답변은 비슷한 비율로 나온 것이다. ‘부동산보유세’ 입장에선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보유세강화가 진보진영 논리이지만 ‘높게 유지’(39.9%)보다 ‘완화’(57.8%)가 높았고, ‘완화’ 주장은 ‘보수’(57.7%)와 ‘진보’(58.2%)간에는 차이가 없었다. ‘한•미 FTA 국회처리’도 ‘보수’(57.7%), ‘진보’(53.5%) 모두 찬성이 많았다. 결국 응답자들이 '정쟁과 정치구호' 보다는 '국익과 실용주의'에 따라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최근의 대선정국 흐름은 구호성 ‘슬로건’만 난무하고 대국민 질권(質權)으로서의 공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대선 주자 간의 미래비전과 대안 경쟁,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기에 선거 열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으며, 후보의 인물, 정책, 도덕성에 관해서도 제대로 검증할 시간 자체가 절대 부족, 대선 후보 간 비교도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또한, 대선후보들이 내 놓는 공약들을 보면 꼭 지키겠다는 대국민 약속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슬로건이나 쟁점을 만들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까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까지 하다.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首班)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대통령으로 위임 받고자 하는 대선 후보는 어느 누구든 국가와 경제운영의 기조는 물론이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똑바로 꿰뚫어, 외교 및 통상전략이나 新성장동력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자세히 설명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한 '종합 정책안'으로서 공정한 승부를 가르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온갖 문제가 뒤엉킨채 큰 과도기에 처한 한국민주주의의 난제를 풀고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한단계 선진화로 도약시킬 수 있는 해법의 정도(正道)가 될 것이다.

17대 대선은 민주화 이후 5번째 치러지는 선거다.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그 불확실성을 종결짓는, 선진형 민주정치구조의 주춧돌을 놓는 굳건한 기반이 돼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또한번의 '비상시국'을 맞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는 지금부터라도, 개인의 정치적 실리를 앞세우는 정쟁성 혼란을 탈피, 국가의 미래비전과 대안을 놓고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정책 경쟁구조가 반드시 뿌리를 내리도록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나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타임즈 이병도 주간[bdlee@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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