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함께, 소설을 읽자

입력 2017-02-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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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잠이 깨어 책을 들었다. 구효서의 ‘풍경소리’. 홀로 깨어 조용히 읽기에 딱 어울리는, 맑은 소설이었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요즘 세상에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도 다룰 수 있구나 싶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구효서의 문체에 빠져서 한참 행복했다. 30여 년을 오로지 소설 쓰기에 매달려 온, 전업 작가의 끈기와 뚝심이 존경스러웠다. 주말이라 출근할 일도 없으니 몇 장을 읽고 생각하고, 또 몇 장을 들척이다 끄적거리며 노닥노닥, 서두르지 않아도 좋았고.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게다가 소설은 더 안 읽는다.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라고 핑계를 대지만 소설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돈 버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도 않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소설은 대학에 가거나 자격증을 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사 시간이 남아돈다고 해도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작품에 눈을 돌린다. 게다가 TV나 게임, 음반, SNS, 프로스포츠, 야외 활동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니 소설이 설 자리는 더욱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실용적인 효용가치만 필요한 건 아니다. 몇 시간 며칠에 걸쳐 읽어야 할 소설을 두 시간 정도면 더 자극적인 영화나 드라마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 매체로 대신할 수 없는 향기와 감동이 소설에는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한국단편문학전집의 감동과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평생을 지배하는 그 감동을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매번 감탄한다. 그리고 내가 쓰는 어휘가 얼마나 빈약한지 절감한다. 영어 단어 하나, 한자 하나 못 읽는다고 무식한 사람 취급을 하면서도 우리말에 대해서는 예의가 너무 없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 공간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 소설만큼 유용한 도구가 또 있을까? 소설이 허구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인물과 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 속에서 길을 찾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성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설은 재미있다. 시간 때우기도 좋고 기분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자녀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어휘력과 표현력을 키워주는 데에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소설을 많이 읽어야 능사는 아니다. 시간이 없다면 단편소설을 권한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설사 내가 산 소설책이 기대 이하라면 책꽂이의 장식품이나 냄비 받침으로 써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주변 사람에게 나눠 주거나 중고로 팔아 잔돈을 챙길 수도 있다.

책상에 모처럼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보자. 집이 좁다면 소파를 치우고 식탁을 책상 겸용으로 써도 좋다. 습관적으로 틀거나 심심해서 켜놓은 텔레비전을 끄고 휴대전화도 잠시 접어 두고, 오늘은 온 가족이 소설 삼매경에 빠져보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엄마는 연애소설, 아빠는 역사소설, 아이들은 SF 공상소설을 골라도 좋다. 세상에 소설책만 있는 것은 아니니 잡지나 신문, 만화면 또 어떤가? 팍팍하고 점점 거칠어지는 세상, 소설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발견하고 위로도 받고 힐링도 해보자. 문학의 향기에 젖어 며칠은 내가 문화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들 무엇이 문제랴. 가족이 책을 함께 읽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맑고 따뜻한 사회일 것이다. 단, 소설에 빠져 가족과의 대화나 소통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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