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24일까지 변론이 마무리되면 3월 초 선고가 유력합니다. 헌법재판소가 ‘더 이상 국정운영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잘못이 있다’고 선고하면 그 즉시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됩니다. 반면 ‘잘못이 없다’거나, ‘잘못이 있어도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고 결정한다면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됩니다. 과연 어떤 경우, 어느 정도 잘못을 해야 파면 결정이 내려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헌법 제65조 1항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탄핵 소추 요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세밀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우선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한 행위라야 합니다. 사적인 행동은 제외되는 겁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한 전직 비서관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는 선거중립 위반을 주장했지만, 헌재는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같이 일하던 전직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사적인 자리에서 한 얘기는 대통령 지위에서 한 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이 오랜 지인인 최순실 씨를 만나 국정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조언을 얻었더라도, 사적인 상담에 그친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일련의 행위가 실제 정책에 반영됐다면 그것은 대통령 직무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므로 탄핵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헌재는 2004년 노 대통령이 전국에 생중계된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한 것은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자리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직무집행’ 과정에서 참석한 것이고, 실제 선거에 영향을 줬다고 본 것입니다.
그 다음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여야 합니다. 헌법은 법률보다 추상적입니다. 또 헌법위반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만 다투고 법원이나 검찰에서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7시간’ 관련 탄핵소추 사유를 볼까요. 소추위원 측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일인 2014년 4월 16일 국가 재난과 상황을 수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도의적 비판은 별개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파면 사유에는 도의적·정치적 책임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못 펴 민생이 파탄됐다, 라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탄핵 사유는 아닙니다.
하지만 국회는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출근을 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적극적인 대처를 게을리 한 것은 단순한 도덕적 비난 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도 헌법 10조에서 추상적으로 도출되는 ‘생명권 보호의무’를 져버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헌법은 법률보다 내용이 추상적입니다. 법원 재판이나 검찰 수사가 직접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헌법재판관들이 독자적으로 재량껏 판단할 여지가 넓어집니다.
반면 ‘법률 위반 사항’은 요건이 까다롭습니다. 대표적인 게 뇌물죄입니다. 검찰에서 수사가 1차적으로 마무리됐고, 특검에서도 한창 수사 중입니다. 법원에서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로서는 법원과 결론이 다를 경우 비판 여론을 받을 부담도 있습니다. 실제 2015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헌재는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인정했습니다. 반면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형사재판을 맡은 대법원은 ‘RO의 실체를 인정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두 사법기관이 상반된 결론을 내리면서 일부에선 헌재 결정에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측도 이 점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특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고, 법원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 위반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아무런 재산상 이해관계가 없어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고 합니다. 최 씨가 받은 돈을 대통령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직접 돈을 받지 않아도 성립하는 ‘제3자 뇌물죄’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제3자 뇌물죄는 돈을 건넨 쪽의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측은 설령 청와대가 국민연금에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했더라도 과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손실을 끼치는 것인지 불확실해 ‘부정한’ 청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폅니다.
언뜻 보면 마치 형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탄핵심판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입장은 다릅니다. 지난달 5일 2차 변론기일로 넘어가 볼까요. 이날 박 대통령 측은 직권남용과 뇌물죄 둘 중 하나만 주장하라고 합니다. 하나의 행위가 두 개의 범죄가 될 순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추위원 측은 직권남용과 뇌물수수를 함께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언급합니다. 그 때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탄핵심판입니다. 소추위원 측에서는 죄수론(죄가 몇 개인지 따지는 이론)이 나오는데, 형사재판이 아닙니다.”
형사재판이라면 한 개의 행위가 몇 개의 죄가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형량이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탄핵심판은 대통령이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재판입니다. 죄가 몇 개건, 그게 직권남용이건 뇌물죄건 돈을 부당하게 가져간 사실만 인정되면 탄핵 사유로 삼을 지는 헌재가 독자적으로 판단합니다. 수사기관의 혐의 구성이나 대법원 판례는 헌법재판관들이 참고할 뿐, 얽매이지 않습니다. 특히 헌재는 국회가 9가지로 나열한 탄핵 사유를 헌법위반사항 4개, 법률위반 사항 1개로 분류했습니다. 공무상 비밀누설이나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은 ‘법률위반사항’ 하나로 묶어서 판단을 내려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자 이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칩시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한참 따지는 게 많았습니다. 그럼 이제 바로 파면이 되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2004년 헌재는 헌법 법률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정도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막말로 무단횡단 했다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 직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실제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상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결론내지는 않았습니다. 그정도로 파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럼 어떤 경우가 중대한 법 위반이 될까요.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뇌물을 받는 경우 △명백하게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국가조직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하는 경우 △선거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 △권한을 남용해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헌재는 직권으로 대통령의 잘못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국회에서 소추 사유로 삼은 이유에 한해 판단을 내립니다.
특검은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은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구속됐습니다. 만일 대통령이 개입했다면 ‘국가조직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한 경우’로 파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유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습니다. 국회에서 의결한 소추사유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회가 소추사유를 추가하고 싶다면 탄핵안을 의결할 때와 똑같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사유, 굉장히 까다롭지요. 그만큼 대통령을 탄핵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게 다 국민이 직접 뽑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정리하면 1.대통령이 직무상 한 행위 2.그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 위반 3. 그 위반 정도가 대통령직을 더 맡길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해야 하고 4. 국회에서 탄핵소추 사유로 의결한 사안이라야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헌재는 구체적으로 탄핵사유를 △비선조직을 통한 국정농단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등 대통령 권한 남용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7시간'으로 대표되는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대기업으로부터의 뇌물수수 등 5가지로 나눴습니다. 세부 항목을 어떻게 판단할 지는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