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과제 수행형’ 관료만 양산… 고시기수 텃새·승진경쟁 불리 문제
‘고시·순혈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관료사회에 다양성과 전문성 등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5급 민간경력자 채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직사회는 고시 기수를 기준으로 상관이 지시하는 과제를 묵묵히 해결해 내는 ‘과제수행형’ 관료만 양산 했을 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실행력 있는 관료는 키워내지 못했다. 이에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사혁신처는 매년 100명 안팎의 민간 분야 경력자를 계약직이 아닌 정년이 보장되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동안 민간 경력자 채용은 부처별로 수시로 진행됐으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파문 이후 공정성 시비가 일자, 2011년 처음으로 일괄 공채로 바뀌었고 올해로 제도 도입 7년 차를 맞는다. ‘제2의 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공직은 여전히 선호도 높은 직장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민간경력 채용에 3209명이 지원, 평균 2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합격자 평균 나이는 38세로 5급 공채(옛 행정고시)보다 10세 많다.
최종 선발 인원은 2011년 93명에서 2012년 103명, 2013년 96명, 2014년 120명, 2015년 126명, 2016년 130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5급 전체 신규 채용을 놓고 보면 현재 7(5급 공채) 대 3(경력채용) 정도다. 각 부처에서 민간경력자 충원을 요청하는 수요에 따라 오는 5월에 공고를 하고, 7~11월 필기에서 면접시험순으로 채용 절차가 진행되며 12월에 최종 합격자 발표를 한다. 합격자는 공직 조기 적응 지원을 위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기본 실무교육을 받는다.
응시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경력 10년 이상 또는 관리자 경력 3년 △관련 분야 박사학위 또는 석사학위 소지 후 4년 이상 경력 △공무원 임용시험령상 특정 자격증 소지 후 일정 경력 중 1개 요건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선발 절차는 공직 적격성, 직무 적격성, 공직 가치관 등 3단계로 평가하며 1차 필기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에서 10배수를 선발한다. 이후 2차 서류전형에서 3배수를 뽑은 뒤 집단발표, 개별면접 등 역량 검증을 위한 3차 면접시험을 거쳐 최종 선발된다.
민간경력 채용은 4회까지 직무 분야별로 필요한 인재를 뽑아오다가, 특정 전문직 붙박이로 둬서 한정적 역할만 맡길 것이 아니라 민간에 개방하기 꺼리는 주요 정책 결정 직위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5회째부터 일반행정 등 직류별로 뽑기 시작했다.
한 민간전문가 출신 사무관은 처음에 관계부처 협의와 국회 협의 등 독특한 공직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고시 기수 위주로 뭉친 공직사회에서 따돌림 당한다고 느낀 적도 있다고 말했다.
5급 민간경력 채용이 부처에서 이미 내정자를 염두에 두고 수요를 낸다든지, 채용에 있어서 불공정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편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필기와 면접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면접 위원이 면접자의 나이 등 신상 정보를 모른 채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중앙부처에서 전문 계약직으로 일하던 공무원을 이미 내정하고 경력 채용을 실시했지만 내정자가 필기시험에서 불합격해 채용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현직공무원은 경력으로 지원할 수 없지만, 계약직의 경우 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민간 경력을 호봉에 100% 반영해주지만 유능한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처우를 더욱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10년 이상 민간 경력을 가지고 들어온 사무관은 “처음 급여를 받아보니 민간에서 받았던 연봉의 딱 절반 수준으로 깎였다”고 꼬집었다.
민간의 경험과 시각을 공직사회에 불어넣기 위한 것이 근본 취지이지만, 의견을 내는 순간 자신의 일이 돼 버려 나서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40대 초반의 민간 경력자들이 부이사관(3급)에 이르면 정년이 임박하므로 고위공무원단(1~2급)에 진입할 기회도 줄어든다는 점도 공직을 꺼리게 되는 이유로 꼽힌다. 20대 후반에 고시에 합격한 관료들에 비해 승진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임업체 근무 등 16년간 순수 민간 경력을 쌓고 지난해 일반행정직으로 공직사회에 들어온 윤복근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교육 과정 중 지도 교수가 ‘조직에 조화가 되되, 동화되지 마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처럼 대주주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국민을 위한 가치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민간경력 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정년 보장 등 현실적인 지원 동기만으로 공직사회에 들어온다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11년 민간경력 채용 1기로 입사해 현재 인사혁신처 인재채용국 총괄 계장을 맡고 있는 하종원 사무관은 삼성에서 10년간 인사 업무를 담당하다 국가를 위해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금밥그릇’을 걷어차고 나온 케이스다.
하 사무관은 민간경력 채용 제도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역시 민경채는 일을 잘 한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주관적인 개성은 살리되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거나, 다니는 회사가 어려워 피신처로 공직을 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리고 싶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