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비판이 거세지자 약값 인상을 놓고 제약업계가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종전보다 약값 인상폭을 낮추는가 하면 아예 인상하지 않은 업체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1월이면 그간 처방약 제조업체들은 소매가격을 관행처럼 인상해왔다. 미국 투자회사 레이몬드제임스&어소시에이츠의 분석에 따르면 상당수 품목에 대한 가격을 인상하지 않거나 인상해도 10%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기업은 많지 않았다고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분석 결과 미국 제약업계는 지난 1월 총 2353개의 약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인상된 약품 수의 4분의 1 정도다. 그간 처방약 제조업체들은 매년 1월마다 가격을 10% 넘게 인상해왔다. 제약업계 약값 인상률 중간값은 8.9%로 지난해에서 크게 오르지 않았다. 다만, 미국 물가상승률이 2%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약값 인상폭은 높은 편이다.
가격인상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은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알러지 응급 치료제인 에피펜 제조업체인 밀란은 두 팩당 가격을 609달러로 대폭 인상하면서 논란이 됐다. 회사는 들끓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결국 지난해 12월 약값은 300달러로 반값 복제약을 출시한 바 있다.
올해 1월 약값 인상폭이 10%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인상분에 따른 미국 약값 지출은 수백만 달러가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애브비는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로 지난해에만 104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에는 휴미라 가격을 8.4% 올렸다. 지난해에는 인상폭이 18.5%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는 소폭 인상에 그친 셈이다. 그러나 8.4% 인상폭은 곧 미국 의료 지출비가 올해 8억5000만 달러가 늘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앨러간도 지난 1월 평균 약값 인상률은 7.4% 정도였다.
제약업체들이 종전과 달리 인상률을 10% 미만으로 적용한 배경에는 악화된 여론이 있다. 자칫 종전처럼 인상폭을 유지해 대중의 분노를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올해 유독 약값 인상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메디케어(노령층 의료지원) 당국에 제약업체와 직접 약값을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요구가 약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앞서 드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제약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메디케어 당국에 이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계획을 시사한 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메디케어는 미국 처방약 시장의 가장 큰 손 구매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