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유럽에서 논란 예상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히잡 등 스카프 착용을 직장에서 금지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최고 법원인 ECJ는 고용주가 특정한 환경에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복장을 제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판사 15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직장 내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제재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벨기에 보안업체 G4S의 직원이 소송을 제기한 결과다. G4S에서 접수원으로 일하던 사미라 아쉬비타는 2003년 고용 당시 히잡 착용을 금지당했다. 그는 2006년 4월 근무 시간에 스카프를 착용하겠다고 밝혔으나 고용주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 결국 해고됐다. 아쉬비타는 벨기에 법원에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벨기에 법원은 ECJ에 법규 해석을 문의했다.
ECJ는 고용주가 특정한 상황에서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복장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ECJ의 판결에 G4S는 “벨기에는 노동자 조직에 종교와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관행을 갖고 있다”며 “특히 일반 시민과 접촉할 일이 많은 조직은 더 그렇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동시에 “영국과 같이 종교, 정치적 중립성을 관습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띠는 의상을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WSJ는 이 판결이 네덜란드 총선과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반(反)이슬람에 동조하는 세력이 커지면서 극우 정치인들이 높은 지지율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극우를 대표하는 인물은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다. 그는 EU를 탈퇴해 네덜란드를 완전한 탈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PVV는 얼마 전까지 지지율 1위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선 후보도 반 이슬람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지난 2월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히잡 착용을 거부하며 반 이슬람적인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르펜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ECJ의 판결에 시민사회와 정치계는 다양한 반응을 내놨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의 존 달루이센 대표는 “유럽 법원의 이날 판결은 실망스럽다”며 “고용주에게 차별의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오늘날 대중들은 편견으로부터 보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랑스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대선 후보는 “이번 판결은 유럽과 프랑스 전역에서 결속하기 위해 적법한 판결”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