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얼마 전 일본 도쿄의 한 복판에 파격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 SPA 왕국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의 말에서 현재 SPA 업계의 위기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 16일 도쿄 아리아케에 대형 사무실겸 물류 거점을 오픈했다. 세계적인 온라인 유통공룡 아마존과 경쟁하기 위한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곳이다. ‘유니클로 시티 도쿄’로 이름지은 이곳은 상품의 기획에서부터 마케팅, 생산 등 유니클로 사업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부서를 한 층에 모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회사는 이곳을 가상의 도시에 비유해 직원간 활발한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창의력 향상과 업무 효율화를 꾀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유니클로에 관련된 모든 일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야나이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지금까지는 기획에서부터 생산, 물류를 거쳐 매장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이 전달되기까지 마치 릴레이처럼 상품과 정보가 이동했지만 앞으로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그 정보를 IT를 통해 모든 사업부가 즉각 공유해 소비자가 원하는 것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야나이 회장은 최근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착안을 해낸 데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위기감이 배경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의 능력이 인간 이상이 되는 싱귤래리티 시대가 앞으로 25~30년 안에 온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미 그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은 사용하려고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곳까지 왔고, 얼마든지 널려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하려면 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아리아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야나이 회장은 기술 발전으로 업종별 차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제조업이나 유통업 등 기존 산업 분류는 없어질 것이라며 옷을 만들든 시스템을 만들든 관계없이 오직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산업계에 경종을 울렸다.
이 때문에 그는 모든 기업이 설립 초창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전 세계에 36억 개의 모바일 단말기가 있고, 앞으로 모든 것에 반도체가 장착되는데, 그것들이 모두 범용품이 돼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장사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게 그의 선견지명이다.
그는 무선자동식별(RFID) 태그도 가격이 떨어지고 있으며, 올해에는 재고 관리도 RFI로 한다는 계획이다. 어떤 제품이 얼마나 팔리는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거기에서 얻은 데이터를 사용함으로써 그 매장에서 내일 어떤 게 팔릴까라는 예측도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요를 100% 알아맞힐 수는 없기 때문에 재고 처분을 위한 할인 행사는 불가피하다. 다만 할인폭과 할인 시점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야나이 회장은 물류 배송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가 고객에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며 주문 후 3시간 안에 배송하는 것이 정말 고객이 원하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유니클로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세간의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SPA 시장에 뛰어들었다. 야나이 회장은 당연히 아마존 등과도 경쟁할 것이라며 그러나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협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든 1개사 만이 독점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의 강점은 옷에 관한 것의 전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큰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 피해를 입지만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면 그것을 오히려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패스트리테일링도 금융업과 제조업을 거쳐 현재 네트워크 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복합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처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