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시중에 풀린 유동성 또한 중소기업 및 실물경제로 흐르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이나 증시로 유입되어 투기 자본화되거나 가계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우리 경제의 미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기업은 여유자금이 생기면 고용창출이나 신사업과 연구개발 등을 위한 투자에 힘써야 한다.
우리 정부는 시중에 돈이 잘 굴러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기업이 돈을 투자나 배당 등을 통해 풀지 않고 내부에 축적해두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2015년부터 운용 중에 있다. 바로 근로소득증대 세제, 배당소득증대 세제, 기업소득환류 세제 등 3대 패키지 시책이다. 이 중 근로소득증대 세제와 배당소득증대 세제는 일종의 당근이고, 기업소득환류 세제는 채찍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우선, ‘근로소득증대 세제’는 임금이 증가한 기업에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이다. 즉 모든 기업은 당해 연도 임금증가분이 직전 3년 평균임금 증가율을 초과하는 경우, 그 금액의 5~10%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다만, 임원과 고액연봉자의 봉급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배당소득증대 세제'는 배당을 많이 한 기업에 대해서는 소액주주의 배당수익은 물론이고 대주주까지도 할인된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에 비해 ‘기업소득환류 세제’란 대기업이 이익금을 사용하지 않고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놓기만 할 경우 과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투자와 배당, 임금 증가 등이 당기순이익의 일정 비율 이하인 경우 미달액에 대해 10%의 법인세를 추가로 매기는 제도를 뜻한다. 이의 적용대상 기업은 자기자본 500억 원 이상 법인 또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기업이다.
물론 이러한 세제를 통한 자금지출 유인책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 투자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나가는 것이 더 근원적인 시책이라 하겠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는 과도한 건축규제 등으로 관광호텔 신· 증축이 무산되거나 외국인 투자유치가 어렵게 되는 경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업들이 연구개발투자나 인적자원의 능력향상을 위해 자금지출을 늘리도록 하는 유인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게 되고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다. 같은 이치로 돈이 돌지 않고 한 곳에 묶여 있으면 경제의 움직임이 멈추고 이게 심해지면 경제 전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돈이 유통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휴지조각이나 쇳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무인도에 갇힌 사람에게 수십 억 원이 들어있는 돈 가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빵 한 조각이나 물 한 병의 가치만도 못할 것이다. 역시 돈이란 돌아야 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