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으로 인하여 한·중 관계가 많이 불편하다. 무모하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중국의 태도를 보며 대국다운 면모는커녕 소졸(小卒)하기 그지없음에 실망이 크다. 우리에게는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중국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가졌던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역사가 있다. 그렇게 강했던 나라가 한반도 안으로 위축되더니 지금은 그마저도 남과 북으로 갈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틈에 끼여 곤욕을 치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강한 고구려를 이끌었던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 그립다.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太王)’이지 결코 ‘광개토대왕(大王)’이 아니다. 1980년대 초, 광개토태왕비가 발견되었을 때 당시 동아시아 국제사회에서 ‘횡포’를 부릴 힘을 가졌던 일본이 광개토태왕비 연구를 독점하다시피 함으로써 비문을 변조하고, 변조한 비문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 오늘날까지 한·일 간의 역사전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이 광개토‘태왕’을 ‘대왕’으로 낮춰 불렀는데 일제의 교육을 추종하며 받아온 친일 사학자들이 광복 후에도 여전히 광개토‘대왕’이라고 부름으로써 우리는 ‘대왕’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태왕은 황제에 비견하는 호칭이고 대왕은 제후에 대한 호칭임에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대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만주벌판에 우뚝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에는 엄연히 ‘太王’이라고 새겨져 있음에도 말이다.
광개토태왕이 사후에 받은 정식 시호(諡號)는 ‘국강상광개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平安好太王)’이다. ‘나라[수도:首都]의 언덕에 묻히신 분으로서[國岡上] 국토의 경계를 널리 넓히시고[廣開土境] 평안하게 다스리신[平安] 좋으신 태왕[好太王]’이라는 뜻이다. 고구려는 중국이 사용하는 ‘황제’라는 칭호에 대응하여 독자적으로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