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차장
가장 극심한 쪽은 최근 양강 구도를 형성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기싸움이다. 이들은 ‘패권청산’ ‘적폐연대’ 공방을 주고받으며 거친 ‘프레임’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문 후보 측에서는 안 후보의 높은 지지율 상승세를 꺾기 위해 연일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며, 안 후보 측은 이를 적극 해명함과 동시에 문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세에 맞불을 놓고 있다.
‘문모닝’, ‘안모닝’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눈만 뜨면 서로를 공격한다는 얘기이다. 결코 달갑지 않은 신조어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된 지난 5일 이후 공식 논평 등을 통해 민주당은 25회, 국민의당은 35회나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제기된 의혹에 해명을 했다고 한다. 닷새간 무려 60회의 네거티브 공방이 이뤄진 셈이다.
대선 준비 기간이 짧은 특수한 상황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두 후보의 선거캠프에서는 마음이 급할 것이다.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적 판단도 아마 깔려 있을 터이다.
하지만 네거티브 공방만 거듭해서는 누구도 민심을 얻는 승기를 거머질 수 없다. 한정된 시간 내 각 당 후보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정책 능력, 통치 비전을 따져보고 선택해야 하는 국민은 지금 혼란스럽다.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깎아내리기식 공방전보다는 선의의 정책 대결을 유권자는 보고 싶어 한다. 대선이 당초 일정보다 7개월 이상 당겨지면서 국민이 제대로 후보들을 검증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의 소중한 한 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깜깜이 투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북핵 위협, 미국의 금리인상과 갈수록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서 우리의 안보와 경제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각 캠프에선 하루라도 준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아직 대선 공약집을 내놓은 후보는 한 사람도 없다. 미국에선 보통 대선 두 달 전 공약집이 나온다. 오는 23일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의 유력 후보들이 지난 2월 초에 벌써 공약집을 발표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정권 인수 기간이 없는 만큼 예비 내각을 공개하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이나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구상도 구체화된 게 없다.
이번 대선은 역대 다른 대선과는 의미가 남다르다. 촛불에서 분출된 민심을 제대로 구현해 내는 것이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다시 제대로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측근의 국정농단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만큼은 제대로 옥석(玉石)을 가려야 한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딱 29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라도 후보들은 비전과 정책으로 진검승부를 펼치길 바란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TV 끝장 토론에 적극 참여해 새 정부의 정책 비전과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 주길 국민은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