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왕좌 주인이 바뀔 조짐이다. 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라이벌 모건스탠리에 크게 뒤지는 분기 실적을 내놓으면서 이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19일(현지시간)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모건스탠리의 올 1분기 매출액은 97억5000만 달러(약 11조1150억 원), 순이익은 19억3000만 달러였다. 순이익은 시장 환경 개선 덕에 채권 트레이딩 수익이 거의 두 배로 늘면서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기업 인수합병(M&A) 자문 부문이 호조를 보이면서 투자은행 부문 순이익도 선방했다. 투자은행 부문 순이익은 주당 1달러로 시장 예상치 0.88달러를 웃돌았다.
이는 전날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실적과 확연히 대조된다. 골드만삭스의 1분기 매출은 80조3000만 달러, 순이익은 21억6000만 달러였다. 블룸버그통신이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매출이 83억3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CNN머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요직 인사를 배출한 골드만삭스로서는 초라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역대 미 행정부의 요직 인사를 배출하면서 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와 합쳐져 ‘거버먼트삭스(Government Sachs)’라고 불릴 정도로 미 정부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까지 골드만삭스 출신들의 백악관 입성에는 예외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도 골드만삭스 출신인 스티븐 므누신을 재무장관 자리에 앉혔다. 골드만삭스의 2인자였던 개리 콘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았다. 미 백악관에 골드만삭스의 후광이 비치자 자연스레 골드만삭스의 사업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골드만삭스의 실적은 실망스러웠고, 수십 년간 라이벌 관계인 모건스탠리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워싱턴에서는 골드만삭스가 이겼을지 모르나 월가에서는 모건스탠리가 승전보를 울린 셈이다.
모건스탠리는 특히 채권 트레이딩에서 17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체 실적 호조를 견인했다. 이는 1년 전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채권 트레이딩 부문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날 모건스탠리의 주가는 3% 급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날 골드만삭스는 실적 부진의 여파로 주가가 5% 폭락했다.
모건스탠리는 대출 부분에서도 20% 성장했다. 모건스탠리의 조나단 프루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모기지, 증권 포트폴리오 대출, 맞춤형 대출을 통해 성장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최고경영자(CEO)는 “사업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라면서도 “이번 분기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강력한 분기 중 하나”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고먼 CEO는 불확실성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세제개혁안 등을 둘러싼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CNN머니는 지적했다.
고먼 CEO는 “현재 시점에서 규제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검토를 공언한 도드-프랭크 금융법 폐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다. 도드-프랭크법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 발효된 법으로 금융지주회사 감독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로서는 도드-프랭크 폐지가 이행되는 시점은 불확실하다. 지난 11일 미국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도드-프랭크법 일부 조항은 남겨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먼 CEO는 “다가오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포퓰리즘 물결이 유럽에서 번지는 것을 투자자들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루잔 CFO도 “유럽의 선거가 모건스탠리가 새로운 주식과 채권을 발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