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란 말이 있다. 소파에서 포테이토 칩을 먹으며 뒹굴거린다는 뜻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거나 휴일이면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군것질을 하며 TV나 영화 등을 즐기는 현대인의 생활 습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젠 이것도 옛날 말이다. 카우치 포테이토란 말이 생겨난 1980년대 후반에만 해도 감자칩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간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이어트가 일상화하면서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감자칩은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간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일본에서는 감자칩 매출 의존도가 높은 한 과자업체의 앞날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한때 품귀 현상을 보였던 허니버터칩과 비슷한 제품을 먼저 선보인 가루비(Calbee) 얘기다. 설상가상, 지난해 홋카이도 지역을 강타한 태풍의 영향으로 감자 수확량이 급감하자 가루비는 지난 10일 간판 제품인 감자칩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매출의 30%를 감자칩 판매에서 얻는 가루비로서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홋카이도산 감자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에 심어 8월 중순부터가 수확기인데, 수확 직전 태풍이 덮치면서 감자 농사가 엉망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 감자는 80%가 홋카이도산이다.
가루비가 감자칩 판매를 중단하면서 시중에서 감자칩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가격이 껑충 뛰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그런다. 감자칩 수요는 연중 끊임이 없는데 가루비는 판매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냐고. 물론 가루비도 원자재 수요와 농산물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감자를 저장하고 있다. 가루비에 따르면 감자 저장은 4개의 공정을 거친다. 호흡 활성화를 억제하는 드라잉, 표면 흠집을 자연 치유력으로 어느 정도 복구시키는 경화, 발아를 억제하기 위해 온도를 낮추는 냉각, 마지막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홀딩이다. 이런 과정은 감자에 포함된 당분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
다만 이번 사태가 시중에서 감자칩 품귀까지 부른 건 감자칩 품질을 중시하는 회사 방침 때문이다. 감자칩에 적합한 감자 품종은 도요시로라 불리는 것이다. 아무 품종이나 감자칩이 될 수는 없다. 도요시로는 조리 후 변색이 적고 튀겼을 때 색감이 노릇노릇, 식감도 더 바삭바삭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루비는 지난해 태풍으로 감자칩용에 적합한 감자를 충분히 수확하지 못했다. 품질과 식품 안전을 내세우는 가루비로서는 기준 미달 품종으로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일시적인 수익 감소를 각오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결단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제품에 이물질이 혼입돼 관련 상품을 포함해 해당 상품을 전량 회수한 야키소바(볶음국수) 제조업체 페양,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면서 소고기 덮밥 판매를 중지해야 했던 요시노야. 이들 업체는 주력 제품의 제조 공정이나 원료에서 발생한 문제로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페양은 판매를 재개한 뒤 야키소바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요시노야는 소고기 덮밥 판매가 중지되자 서둘러 내놓은 돼지고기 덮밥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고정 메뉴 하나가 추가되는 등 메뉴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이들 사례는 원재료로 판매에 차질이 생겼을 때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원재료 문제를 숨기고 품질이 떨어진 제품을 계속 팔았다면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맥도날드다. 맥도날드는 2014년 유통기한이 지난 중국산 닭고기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렀다. 이후 공급업체를 바꿨지만 실적 부진을 만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기업은 어떤 이유에서든 원자재 공급이 끊어지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체 공급원을 모색한다. 그러나 공급원이 바뀌면 원재료 품질도 달라진다. 품질이 기존만 못하면 이는 수익으로도 직결된다. 따라서 기업 경영자라면 어떤 난국에 직면하든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반성하면서 공급망을 관리해야 한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