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진영 할 것 없이 대선주자들이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5당 대선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집단소송제 도입, 대기업 갑질 엄벌, 일감몰아주기 근절,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또는 개선 등을 약속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가 대통령에 당선 되더라도 공정한 시장질서를 세우기 위한 ‘재벌 손보기’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실천력이다. 구체적인 실행 일정과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재벌개혁’ 공약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자유한국당 홍준표·국민의당 안철수·바른정당 유승민·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집과 토론회 등을 통해 재벌개혁과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주요 경제공약으로 제시했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더해 삼성 순환출자 특혜 의혹 등에 연루되면서 다섯 후보 모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또는 개선을 주장했다. 현재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안 후보는 공정위 상임위원을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그 수도 현재 5명에서 7명으로, 임기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려 공정위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후보는 ‘갑을관계’를 근절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대폭 손질하는 한편, ‘공정거래 관련 법령의 집행강화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법 위반 기업을 엄벌하기 위해 실제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고 한 사람의 피해자라도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도 똑같이 구제받도록 하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것도 5당 후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과 대기업 ‘갑질’ 엄벌도 모두 공언했다.
홍 후보를 제외한 4명은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던 기업범죄를 엄벌하고 비리기업인에 대한 대통령 사면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해 국민의 공분을 산 국민연금의 개혁에도 유 후보만 뺀 4명이 공감대를 나타냈다.
대선후보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에도 방향성을 같이하고 있다. 다만 후보 간의 차이는 있다. 가장 보수 성향인 홍 후보까지 자회사 이사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직접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대기업에서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해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안 후보와 심 후보만, 이사를 선임할 때 소액주주의 권한을 높일 수 있는 ‘집중투표제’의 도입은 문 후보, 안 후보, 심 후보가 동의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5·9 장미대선에서 역대 선거 때보다 강력한 재벌개혁 공약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후보들의 실천 의지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7일 ‘대선후보 경제공약 검증 토론회’에서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대부분 경영 행위와 관련된 것들이 많고 근본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에서는 소극적”이라면서 “구체적인 구상이 없어 재벌개혁에 너무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도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상법개정 등에 대한 의지는 높이 살만 하지만 대선 이슈에서 재벌개혁이 중소기업·소상공인 보호나 하도급 횡포 근절보다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총수를 엄단하는 사안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인 보호나 하도급 횡포 근절 보다는 하도급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총수를 엄단하는 사안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