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유럽발 미국행 비행기에 대해 노트북을 비롯한 대형 전자기기의 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는 사실상 3월에 내려진 조치의 연장선이다. 다만 해당 금지 조치를 언제 시행할지는 확실치 않다. 앞서 미국은 테러 등 안전 상의 이유로 3월 터키,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10개국 공항에서 출발하는 승객을 대상으로 노트북과 태블릿PC 등 스마트폰보다 큰 전자기기는 기내에 싣지 못하도록 하고 수화물로 부치도록 했다. 정보 당국이 수니파 급진세력 이슬람국가(IS)가 휴대용 전자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폭탄물을 개발했다고 밝힌 영향이었다. 영국도 뒤이어 비슷한 조치를 내렸다. 데이비드 라판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우리는 금지 조치를 연장할지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제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조치의 확대 움직임에 항공업계는 물론 관광업계는 그야말로 ‘멘붕’이다. 이미 이슬람권 10개국에서 내려진 조치만으로도 서비스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은 11일 직전 회계연도(2016년 4월1일∼2017년 3월31일) 순이익이 전년 대비 82% 넘게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 항공사는 실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꼽았다.
미국 정부는 올해 1월 말 이슬람권 7개국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 발효를 시작으로 잇달아 반이민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서 잇달아 제동이 걸리자 중동·아프리카 공항을 출발하는 미국행 비행기의 노트북 반입 금지 등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테러 예방을 이유로 일부 비자 신청자에 대해 과거 여권번호는 물론 과거 15년간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등 입국 비자 심사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미국 유럽 항공노선에 반 이민 정책이 끼어든다면 승객 감소로 항공업계는 물론 관광업계까지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 중 40%가 유럽에서 온다. 이들을 실어나르는 항공편은 하루에만 350편이 넘는다. 이에 미국과 유럽 항공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 유럽항공사의 중역은 CNN에 “무언가 (금지조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언제 금지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비즈니스 승객은 기내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승객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11일 증시에서 미국의 델타항공, 유나이티드, 아메리칸에어라인, 독일 루프트한자 등은 1% 안팎의 내림세를 기록했다.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혼선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이 생기고 있다. 1차 반이민 행정명령 발동 이후인 지난 2월 초, 셸 망네 보네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워싱턴공항에서 1시간여동안 붙잡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의 여권에 있던 2014년 이란 방문 기록이 문제였다. 그는 40분 대기, 20분 심사 후에야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반이민정책이 확대되면 이러한 혼선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조치에 대한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기내가 아닌 화물칸에 실었다가 폭발하면 큰 화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기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와 달리 즉시 불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