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나이가 올해로 80이 넘는 고령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한 해라도 더 빨리, 더 늦기 전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86). 그는 매년 고향인 미국 네브라스카의 소도시 오마하에서 자신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 주주총회를 연다. 매년 5월 초면 조용한 시골마을은 ‘오마하의 현인’을 만나러 곳곳에서 모인 주주들로 북적인다. 2박3일에 걸친 일정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데다 목에 뻣뻣하게 힘주고 등장하는 ‘갑부’ 주주에서부터 자녀를 데려온 일반 소액 투자자에 이르기까지 주총 구성원도 다양해 세계적인 음악축제에 빗대어 ‘자본주의 우드스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이 시골 마을에 해마다 모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투자의 고수로 불리는 버핏의 투자 지혜를 두 귀로 직접 듣기 위해서다. 올해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미국 주식에 대한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베스트 증권은 전문가와 일반인 투자자로 구성된 ‘버크셔 주주총회 원정대’을 꾸려 5월 미국으로 향했다. 이들이 몸소 느낀 버크셔 주총은 어땠을까. 안석훈 이베스트증권의 마케팅팀 차장과 김덕준 개인 투자자에게 주총 참가 후기를 들어봤다.
◇주총보다는 축제= “주총이 아니라 팬클럽 팬 미팅이나 축제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김 투자자는 버크셔 주총은 짜인 각본대로 진행되는 우리나라 주총과 달리 버핏을 보러온 ‘팬 미팅’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을 따지러 온 주주들로 분위기가 험악한 주총도 있지만 버크셔 주총은 버핏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한 데 모이다 보니 주총 분위기도 험악하지 않고 서로 친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81년 12명의 조촐한 인원으로 시작한 버크셔 주총은 현재 4만 명에 달하는 주주들이 참가하는 축제가 됐다. 김 투자자는 “주총이 시작되기 전 버핏이 직접 출연한 영상을 보여줍니다. 주주총회와 사실상 상관없이 개그요소도 있고 미국 드라마 패러디를 한 영상인데 참가자 모두가 웃으면서 즐기고, 그러고 난 다음에 주주총회가 시작되더군요.” 주주총회는 의외로 짧게 끝났다. 버핏 회장과 버핏의 오른팔로 불리는 찰스 멍거(93) 부회장 등 버핏 측근의 지분율이 워낙 높아 의결이 비교적 빨리 진행된다. 주주총회가 이렇게 마무리되면 나머지 시간은 모두 질의응답으로 채워진다.
안 차장은 이번 원정대를 꾸린 이유 중 하나로 버핏이 고령이라는 점을 꼽았다. 안 팀장은 “버핏이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에 올해 꼭 가고 싶었습니다”면서 “그러나 예상과 달리 버핏 회장이나 멍거 부회장 모두 고령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재치가 넘쳐 오래오래 사시겠다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버크셔 주식 1주라도 있으면 참가 자격 주어져= 버크셔 주가는 미국에서도 비싸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비싸다. 버크셔의 A주의 가격은 17일 기준으로 24만3110달러(약 2억7369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B주는 161.26달러로 소액 투자자들도 노려볼 만 하는 가격이다. 버크셔 주총은 A주, B주 구분없이 1주만 가지고 있어도 주주당 총 4장의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일부 주주가 잔여분을 이베이에 파는 경우가 있어, 이베이를 통해 사는 방법도 있다. 다만 입장권을 이베이에서 구매할 경우 해외 배송기간 등 변수가 있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주주가 되면 버크셔 측에서 정기적으로 주주총회 참가 여부를 묻고 주총 입장권을 주는 데, 우리나라의 경우 버크셔가 한국 주주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투자한 증권사에 주총 참가를 신청해야 한다.
◇주총 한 번에 50만 지역 경제가 들썩들썩= 버핏의 고향은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다. 평소에는 인적이 많지도 않은 이 도시는 매년 주총이 열리는 5월 초가 되면 어느 대도시 부럽지 않은 유명 관광지가 된다. 워낙 작은 도시다 보니 대도시처럼 호텔이 많지도 않아 주총이 열리는 기간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숙박공유서비스) 가격은 5배 가까이 뜬다. 하얏트 같은 이름 있는 호텔은 이미 1년 전 매진이다. 안 차장은 “오마하 주민에게 물어보니 오마하에서 하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가 버크셔 주총이라더군요”면서 “주총이 열리는 삼일 내내 사실상 쇼핑데이가 열리고, 행사 프로그램 중 주주들이 직접 참여하는 5km 마라톤이 있는데 마라톤 코스 자체가 오마하 곳곳을 볼 수 있고, 돈을 쓰도록 설계가 돼 있어요. 마치 주총이 아니라 오마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쇼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고 말했다.
◇중국인 참가 눈에 띄어= 버크셔 주총에 눈에 띄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높은 중국인 투자자 비중이었다. 김 투자자는 “그 넓은 행사장의 10분의 1을 중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것 같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참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 주총 참여자들을 보고 차세대 자본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안 차장은 중국 내에서 버핏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투자 전설인 동시에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는 버핏의 철학을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버핏의 인기를 입증하듯 중국에서는 버핏의 캐릭터가 그려진 체리코크 캔이 한정판이 판매되고 있다. 이번 주총에도 중국인 투자자들을 의식한 듯 중국 한정판 체리코크가 1캔당 3달러에 판매되고 있었고 실제로도 이 체리코크는 대부분 중국 주총 참여자들이 사갔다고 안 차장은 말했다.
◇가치투자는 끝났다?= 버핏의 투자가 모두에게 환영받거나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총 자리에서는 IT 종목 투자에 대한 버핏 스스로의 반성이 눈길을 끌었다. 버핏은 “IBM에 대한 투자는 내 잘못”이라면서 “몇 년 전 구글이나 아마존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잘 모르는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투자 원칙에 따라 그간 IT주에 투자를 꺼린 것에 대한 후회였다. 버핏은 구글을 매입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구글 창업자가 상장 후 투자계획서를 갖고 왔지만 그대로 지나쳤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버핏이 주장하는 가치투자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안 차장은 가치투자는 이어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가치 투자는 계속 유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면서 “애플이 이번에 투자 규모를 늘린 것도 가치 투자라고 생각한다. 버핏 사후에도 그런(가치투자) 맥락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김 투자자는 “전문가가 아니라 가치투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버크셔의 사상이 녹아들어 간 투자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핏이 일선에 물러나도 가치투자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치투자는 가능할까. 안 차장은 사실상 국내에서는 가치투자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시장 크기가 다른데다 한국 시장은 작은 정보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흔들리고 무엇보다 정보의 불균형 문제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외부 변수보다 실적 위주…미국 주식 투자의 매력= 김 투자자가 처음부터 미국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식 투자에 발을 들인 것은 5년 정도 됐지만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미국 배당주에 관심을 두게 됐고, 미국 주식 투자에 공부를 하다 보니 워런 버핏을 알게 됐다고.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총 원정대에 합류한 김 투자자는 이번 주총 참가를 계기로 미국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주식 투자에는 고유의 매력이 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안 차장은 “한국 시장의 주가는 실적 외에 외부적 요소에 크게 영향을 많이 받지만 미국은 실적을 기반으로 주가가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그 기업의 실적을 보면 투자의 길도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 차장은 “흔히들 사람들이 미국 주식 투자라고 하면 영어라는 높은 장벽에 대한 부담, 그리고 시차와 환율 걱정에 미국 주식 투자에 머뭇거리죠”면서 “하지만 막상 관심을 갖고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고, 증권사 HTS로 주식을 사고팔기 때문에 영어 장벽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