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부채를 팔덕선(八德扇)이라고 불렀다. 부채에 여덟 가지 덕이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는 덕, 험한 자리에서는 깔개 역할을 해 주는 덕, 밥상이 없을 때 밥상 대신 간단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해 주는 덕, 똬리(짐을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대신 머리에 받치고 물건을 나를 수 있게 하는 덕, 오뉴월 따가운 햇볕을 가려 주는 덕, 예측하지 못한 비를 잠시라도 막아 주는 덕, 파리나 모기를 쫓아 주는 덕, 남녀 간에 내외(內外)를 해야 하는 등 뜻밖의 상황에서 얼굴을 가리게 해 주는 덕 등을 일러 부채가 가진 8덕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이 8덕을 제시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으나 전북 전주에서는 합죽선, 태극선 등 각종 부채공예가 성하다 보니 이런 ‘부채 8덕설’이 민간에 널리 퍼져 있다. 이 8덕에다가 판소리꾼들이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손과 발뿐 아니라, 온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 즉 ‘발림(너름새라고도 한다)’을 할 때 합죽선은 필수적인 소도구 역할을 하므로 이 덕 하나를 추가한다.
게다가 호신술을 익힌 옛 선비들은 급한 상황에서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호신을 해 주는 덕 하나가 또 추가된다. 이래서 10덕선이라는 말도 있다. 부채 하나에 이처럼 많은 용도를 부여한 조상들의 지혜와 해학(諧謔)이 자랑스럽다.
혹자는 습기에 약한 한지로 만든 부채로 어떻게 비를 피하며, 방석 대용, 심지어 밥상 대용으로까지 쓸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다 가능하다. 천년을 버틴다는 닥나무 한지로 만든 부채에 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이면 닥종이의 질긴 재질에 기름으로 입힌 방수효과가 더해져 비도 가리고, 방석 대용, 밥상 대용으로도 가능하다. 올여름엔 전주의 합죽선을 하나 장만하여 부채의 10덕을 체험해 보면 어떨까? 이 아니 시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