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막 내린 신격호 시대...‘껌장사에서 재벌총수까지’ 파란만장했던 70년사

입력 2017-06-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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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홀딩스 설립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24일 이사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70년간 이어져온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롯데홀딩스는 이날 도쿄도 신주쿠구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번에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한 인사안을 의결했다. 신 회장의 장남으로 재작년 1월 해임된 신동주 씨가 자신의 이사직 복귀를 요구한 안건은 지난해 총회 때와 마찬가지로 부결됐다. 이로써 롯데는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1인 체제를 굳히게 됐다.

신 총괄회장은 이미 그룹 내 주요 기업 이사직에서 물러난 상태. 이번 롯데홀딩스 이사직 퇴임으로 약 70년 전 설립된 롯데 그룹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롯데와 함께했던 신 회장의 70년사를 돌아보면, 일본에선 ‘조센징’, 한국에선 ‘재일교포’라는 이방인으로서의 설움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롯데그룹을 일군 불세출의 기업인이지만 말년은 좋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 껌 장사로 일본에 롯데 왕국을 건설한 뒤 한국에 또 하나의 롯데 왕국을 세운 신격호 회장.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셔틀경영으로 얻은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그의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 양쪽을 오가며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롯데 일가의 숨기고 싶은 파란만장한 가족사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거인의 탄생=신격호 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영산 신씨 집성촌에서 5남 5년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씨는 재력가이면서도 부를 자랑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았다고 한다.

1940년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신격호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1944년에 졸업했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말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원래 꿈은 작가였으나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도쿄에 다다미방을 얻고 우유배달과 막노동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맨손으로 일본 땅을 밟은 지 불과 8년 만인 1948년에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하던 중 감명깊게 읽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롯데’의 애칭인 ‘롯데’를 회사명으로 정했다.

애초에 과자 청량음료 시럽 냉과 냉동식품 화장품 치약 합성수지 등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만 설립 후 한동안은 풍선껌만 만들었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직후여서 주전부리보다는 주린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던 만큼 껌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박을 친 것이다. 그때부터 롯데 왕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영토 확장과 귀향=롯데 왕국은 날로 번창했다.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으로 일본의 10대 재벌로 부상했다. 유통업 외에도 프로야구 구단(1969), 롯데전자(1971), 롯데리아(1972), 롯데 리스(1978), 롯데 데이터센터(1985), 롯데 엔지니어링(1987) 등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한국 진출은 1966년부터였다.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잇따라 설립했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 분야를 넓혀 1973년 호텔 롯데·롯데전자·롯데기공, 1974년 롯데산업·롯데상사·롯데칠성음료 등을 설립했다. 1975년 롯데자이언츠,, 1978년 롯데삼강, 롯데건설, 롯데햄, 롯데우유, 1979년 롯데쇼핑, 1980년 한국후지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 1978년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건설했다.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사세가 확장되자 한 곳에서만 지낼 수 없었던 신격호는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비운의 가족사=전쟁은 신격호의 가족사에 오점을 남겼다. 신격호는 18세 때 노순화와 결혼했다. 노씨는 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인 신영자씨의 모친이다. 신격호는 노씨와 결혼을 한 상태에서 1941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 딸인 다케모리 하쓰코와 1950년 중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이 된 하쓰코는 1945년 9월2일 일본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석했다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다. 그녀의 부친은 일본 육군대좌로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원로 언론인 정순태씨는 1998년 출간한 저서 ‘신격호의 비밀’에서 신격호가 아내의 집안 내력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측근의 말을 인용, 일본에서 성공한 데에는 하쓰코의 친정 도움이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격호는 하쓰코와 결혼하면서 그의 외삼촌의 성씨를 따 시게미쓰 다케오로 창씨 개명을 했고, 부인 역시 남편 성을 따른다는 일본의 관습에 따라 시게미쓰로 성씨를 바꿨다. 타국에서 사업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일본 명문가와 피를 섞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신동주(히로유키), 신동빈(아키오) 형제 역시 한국 국적이다. 신격호가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는 사이, 첫 번째 부인인 노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도 빼놓을 수 없다. ‘롯데의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미경씨는 제1회 미스롯데(1977) 출신으로 영화 배우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3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으로 깜짝 등장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백화점과 영화관 매점 사업권 등 알짜 사업을 소유하며 그룹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딸 신유미씨를 신격호의 호적에도 올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드러난 거미줄 왕국=한일 양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다 보니 롯데를 둘러싼 국적 논란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롯데의 지주회사는 일본에 국적을 둔 롯데홀딩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롯데는 한국 등 전세계에 총 202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더 복잡하다. 지난 4월 기준으로 롯데는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전체 순환출자고리 459개 중 90.6%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장 기업은 한국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등 9개사에 불과하다. 일본 롯데는 전부 비상장사다. 이는 신격호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는 구조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열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보니 오너 일가가 소수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신격호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주요 인사와 투자 등 핵심 안건은 모두 그가 결정했다. 다시 말하면 신격호 이외의 경영진은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을 포함해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장남과 차남이 소동을 벌인 것도 절대 권력자인 신격호를 아군으로 만들기 위한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흔들리는 롯데 왕국=이복누이 신영자씨까지 뛰어든 두 아들의 경영권 싸움으로 신격호 회장이 반세기 넘게 일궈온 롯데의 근간이 휘청였다. 과자가 중심인 일본 사업은 장남 신동주, 소매 · 화학 등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은 차남 신동빈이 경영을 각각 분담해왔다.

한국 롯데는 자산 규모로 한국 재계 5위. 2013년 그룹 매출은 83조원으로 일본의 약 4000억 엔을 훨씬 웃돌았다. 글로벌 존재감은 한국 롯데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독특한 지배구조상 그룹의 뿌리가 있는 일본 사업이 휘청거리면 한국 롯데도 안전하지는 않다. 현재 한국 롯데는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 규제 영향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제과사업 환경도 녹록지 않다. 주요 껌 소비층이었던 어린이 수요가 줄면서 껌 시장 규모는 2004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제과 이외의 사업도 부진이 계속되고 있어 2013 회계연도 롯데홀딩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27% 감소한 4077억 엔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국에서 과제가 많은 가운데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간의 반목을 조기에 수습하고 안정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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