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포기하세요”

입력 2017-07-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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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뉴스부장

“포기하세요” 요즘 다니는 요가학원의 선생이 곧잘 하는 말이다. 운동 중 무리하지 말고 신체적인 능력이나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뜻이다. 이를 악물고 한 다리로 무리하게 지탱하다 무릎 인대를 살짝 다쳤던 터라 그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 없다.

“옆 사람을 곁눈질하지 마세요” 그가 자주 하는 또 다른 얘기이다. 무리해서, 억지로 하는 데는 ‘옆 사람’의 영향이 적지 않다. 경쟁이 성취의 전제조건이라는 걸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나에겐 이 두 마디가 들을 때마다 신선하다. 그런데도 절대 쉽지는 않다. 흘끔거림과 악쓰는 걸 멈춘다는 건.

잊을 만하면 나오는 ‘갑질 사태’가 또 불거졌다. 호식이두마리치킨은 여직원 성추행으로, 미스터피자는 ‘치즈통행세’와 ‘보복출점’이다. 갑질 논란은 시끄러웠고 언론에 비친 전직 회장들의 얼굴은 까칠(을 연출)했다. 이어 패션잡화 브랜드 MCM을 운영하는 성주디앤디의 김성주 전 대표의 불공정거래 의혹과 홈플러스의 청소용역 업체에 상품권 강매, 제주 메가박스 사주 아들의 막무가내 짓거리까지 줄줄이다.

왜 이렇게 ‘갑질’이란 주제는 도돌이표일까. 2015년 강준만 교수는 ‘의도하지 않은 승자독식주의’라는 집단적 자기기만(自己欺瞞)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갑질 공화국’이라고 비판하며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의 뜻은 한국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모델이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인데, 그 세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용이 되길 열망하는 사회란 용을 인정하고 용에게 굴복하는 신분 서열 사회이며, 그들의 갑질을 용인하는 사회이다. 용꿈을 꾸는 이들은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의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를 멈추는 동시에 언젠간 될지 모를 자신의 ‘갑질족 편입’을 기대한다.

그런데 ‘개천의 용’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실제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최근 젊은 층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신분 상승의 꿈을 포기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얼마 전 나온 서울시 도시정책지표조사에선 ‘나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가’란 질문에 3명 중 2명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또 올 초 한 조사에 의하면 SKY대학 재학생의 73%는 ‘금수저’ 출신이다. 3포, 5포 세대란 말은 이미 식상한 수준이고 취업난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신분 상승’은 허튼소리라고 자조한다.

신분 상승을 포기한 사회란 고착화된 신분 세습의 사회이다. 이렇게 되면 갑질이 줄어들긴커녕 매 순간 어느 분야에서나 더욱 당연하게 나타난다. 대대손손(代代孫孫) 특권의 과실을 챙긴 이들과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의 증오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예 신분 상승이 거부된 현실에선 아마 카스트 제도의 그것처럼 일부의 갑질이 더욱 당연하게 인정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사회 어디에나 소수의 용과 다수의 미꾸라지는 늘 존재한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거나, 될 수 있다는 상징성은 비판받을 사안이 아니다. 다만 모두가 용이 되겠다고 발버둥 치는 건 비정상적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 위해 포기하면 안 된다는 식은 ‘닥치고 상향 지향’이라는 악다구니일 뿐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용이 되길 포기한다는 건 말이 포기지, 포기가 아니다. 열패감(劣敗感)이다. 진짜 필요한 포기란 두 손 들어 버리는 게 아니다. 비겁하게 눈을 감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만 두 발을 딱 붙이고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옆 사람을 곁눈질하는 쓸데없는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용을 갈망하지만 될 수 없으니까’라는 포기가 아니다. ‘용 따위 바라지 않는다’라는 자존감 있는 포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 한 갑질은 우리 사회를 흘끔거리며 악을 써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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