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나 특사 파견 등을 제안해 남북관계의 대전환 계기가 된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처럼 문재인판 ‘신(新)베를린 선언’으로 새로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중단과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가지 대북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우선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고,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으며, 인위적 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3대 불가 원칙’을 분명히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면서 “국내적으로는 남북 합의를 법제화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종전 선언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와 같이 항구적인 평화 없이 추진된 남북 간 경제협력은 언제든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핵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남북 철도 연결, 남·북 및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연결 등이 구체적인 계획이다.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민간교류를 폭넓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쉬운 일’부터 시작해 나가자며 남북 간 대화재개를 포함해 4가지를 북한에 제안했다. ‘10·4 정상선언’ 10주년이자 추석인 10월 4일에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성묘 방문행사까지 열자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 카드를 내밀었다. 또 △북한의 내년 평창올림픽 참가 △휴전협정 64주년인 올 7월 27일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남북 간 접촉과 대화 재개를 제안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며 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당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발언 수위가 톤다운 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비교적 구체적으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교류 제안이 담겼다. 다만 문 대통령은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난 4일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 실험을 비판하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또 ‘지금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호응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 구체적 결실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앞서 집단 탈북한 여성 종업원들을 송환하기 전에는 이산가족 상봉 등 어떤 인도적 문제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고, 장웅 북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은 최근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