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내용이 담긴 청와대 캐비닛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오고, 법원이 캐비닛 문건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증거로 채택하면서 청와대 문건이 향후 유무죄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이영상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은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 공판에 나와 이같은 취지로 증언했다. 이 검사는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에 취임한 직후인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이 이 검사의 상사였다.
이 검사는 "당시 우 전 수석으로부터 ‘삼성에 대해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받아 메모를 작성했다"고 했다. 메모를 작성한 시기는 2014년 7~9월 무렵이라고 한다. 이날 공개된 자필 메모 2장에는 '삼성경영권 승계국면→기회로 활용 1. 우리 경제 절대적 영향력 2. 유고 장기화 3.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가시화'라고 적혀있다. 또 '삼성의 현안을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삼성의 당면과제는 이재용 체제 안착. 윈윈 추구할 수밖에 없음. 삼성의 구체적 요망사항 파악'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검사는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이 장기화되면서 언론 등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를 현안으로 많이 거론해 이를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했고, 메모는 그 초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검사는 수기 메모를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 전 수석에게 보고했고, 최종 승인을 받아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진술했다. 이 검사는 보고서에 대해 "우 전 수석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것으로 임의로 혼자서 작성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당시 민정수석이나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를 아느냐"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에는 "거기까지는 제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메모나 보고서가 이후 어떻게 활용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특검은 "청와대에서 발견된 수기메모가 2014년 7∼9월쯤 우 전 수석의 지시와 검토에 따라 작성됐다"며 "청와대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삼성 현안을 파악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보고서의 결론은 지원이 결국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뇌물의 대가로 전혀 인정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사정기관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에서 '특혜'와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삼성 측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특검이 제출한 청와대 문건을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내달 7일 특검의 구형과 이 부회장 측의 최후변론을 듣는 결심 공판을 연다. 선고는 결심 뒤 2~3주 안에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