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장관 인사가 끝나니 공공기관장 인사에 눈길이 쏠린다. 정권이 바뀌면 안팎에서 가해지는 유·무형의 압력 때문에 임기와 관계없이 물러나는 기관장들이 많다.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달 7일 제일 먼저 사표를 낸 데 이어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 홍순만 코레일 사장 등이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절반도 못 채운 홍 사장이 사표를 냈으니 다른 기관장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2곳의 수장이 사표를 낸 국토교통부 산하 14개 공공기관 중 절반가량의 최고경영자가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임명한 기관장의 거취에는 더욱 관심이 간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권한이 정지될 때까지 이틀에 한 명꼴로 25명의 공공기관장을 임명한 바 있다. 그중 16명이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이어서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샀다. 황 대행이 지난해 12월 16일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한국마사회장에 임명했을 때에도 논란이 컸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공석이거나 임기 만료된 공공기관 상임감사 자리는 19개다. 여기에 9개 공공기관의 상임감사가 올해로 임기 만료된다. 상임감사는 자리별로 임명권자가 다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 상임감사 169명 중 66명이 낙하산 인사였다.
문 대통령의 공공기관장 인선 원칙은 정치권 출신을 배제하지 않되 전문성은 담보돼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설기록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 금융기관장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여야 대표들을 만났을 때도 “공공기관 인사에 보은 인사나 낙하산 인사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약속은 지켜질까. 공직을 사유화하고 논공행상의 노획물로 삼는 행태는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점점 심해져왔다. 공직을 전리품화(戰利品化)하지 않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국방부 장관을 할 거라며 사업가에게 돈을 요구했던 송영선 전 의원은 대통령이 정부에 보낼 수 있는 차관급 이상 자리가 5000개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이 5000개의 자리가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하고 따뜻한 전리품인 것이다.
공공기관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정권의 탐욕과 공공성 준수에 대한 의지 여부는 공공기관 인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고,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아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사를 삼고초려(三顧草廬)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말한 바 있다.
내각 구성에서는 이 원칙이 제대로 구현됐다고 볼 수 없다. 1기 내각은 대충 겉치레로 짠 뒤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문의 사람들’이 나설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취임사에서 말했듯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모든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공직의 전리품화’에 종지부(終止符)를 찍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