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5일 선고를 앞두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해까지 삼성과 부딪혀온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회장을 집중 조명했다.
통신에 따르면 싱어 회장은 지난 18개월간 한 번도 주요 외신의 헤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공격적인 투자와 기업 경영 개입으로 사측과 마찰을 빚으며 기삿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싱어는 월가는 물론이고 산업계 전반에 걸쳐서 악명이 높은 투자자로 정평이 나있다. 변호사 출신인 싱어는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투자에 재능을 살려 1977년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끌어모은 130만 달러(약 14억6700만원)로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현재는 현재 93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투자한 기업의 상황 변화를 주시하다 상대의 허를 찌르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그의 투자 비결이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놓고 15년간 끈질기게 싸운 것도 엘리엇이었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은 “악랄한 벌처펀드”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7일 기사를 통해 싱어는 전 세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투자자라면서 최근 몇 년간 엘리엇의 투자와 성과, 그리고 경영 개입에 대한 영향을 정리해 소개했다.
엘리엇이 국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였다. 2015년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엘리엇은 양사 합병과 관련해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저평가됐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엘리엇은 법원에 양사 합병을 위한 주식 거래를 중단시켜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2016년 검찰은 삼성전자와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의 지원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삼성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삼성전자에 10페이지 분량의 서한을 준비해 삼성전자 분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3명의 사외이사를 추가하고 270억 달러에 달하는 특별 배당금도 요구했다. 삼성은 엘리엇 대부분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지난 4월에 처음으로 분기 배당금 지급을 결정했다.
싱어는 지난달에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미국 텍사스 주 최대 에너지업체 온코를 두고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도 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온코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온코 모회사 에너지퓨처홀딩스의 주채권자인 싱어가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버핏의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이 밖에도 엘리엇은 세계 곳곳에서 기업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날에는 미국 반도체회사 NXP와 퀄컴의 인수·합병(M&A)에 제동을 걸었다. NXP 지분 6%를 보유한 엘리엇은 퀄컴이 NXP에 제시한 47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이 평가 절하됐다며 더 높은 인수안을 요구하거나 합병을 택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싱어가 기업 괴롭히기 전략을 고수하다 보니 되레 CEO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4월 철강부품업체 아르코닉의 클라우스 클라인펠드 전 CEO는 지난 2006년 월드컵 당시 독일을 방문한 싱어 회장이 술에 취해 이상 행동을 했음을 암시하는 협박성 편지를 보냈다. 클라인펠드 전 CEO는 알코아에서 분사 이후 회사를 상장했고, 이 과정에서 엘리엇의 거센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CEO직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이같은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탓에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악랄한 벌처펀드라는 악평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싱어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악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기업 괴롭히기 전술로 악명은 높지만 정작 싱어 회장 본인은 이러한 평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평판을 더는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기업 경영진이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이제까지 자신이 해왔던 투자 행보로 인해 악평은 쌓였지만 되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