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선고] 법원 "신의칙 엄격 해석·적용해야"...판단 근거는

입력 2017-08-31 13:14수정 2017-08-3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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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DB)

법원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측이 주장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노조 측 손을 들어줬다.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신의칙'을 적용하는 것은 엄격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가모 씨 등 기아차 노동자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사측이 노조 측에 원금 3126억 원과 이자 1097억 원, 총 4223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신의칙' 적용 여부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의칙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신의칙이란 민법 2조에 규정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의 명시적·묵시적 합의가 있고 △미지급된 수당을 청구할 경우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넘고 △이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울 때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측은 이를 근거로 재판에서 '중대한 경영상 위기'와 '기업 존립의 위기' 등을 주장했다.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보더라도, 사측에서 이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노사 임금 협상 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따라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을 볼 경우, 회사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 측이 애초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넘는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며 "과거의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회사가 향유했다"고 했다.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기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측 주장도 모두 배척했다. 재판부는 "기아차의 재정과 경영상태, 매출실적 등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2008~2015년 매년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두고, 같은 기간 약 1조~16조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측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의 통상 압력으로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명확한 증거자료가 없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으로 현대차그룹과 협력업체,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이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문제삼았다. 앞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 예측해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특히 "노동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관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번 소송의 결과에 따라 기아차는 최대 3조 원, 업계에서는 수십조 원을 추가부담해야 한다던 일각의 시각을 비판한 셈이다.

재판부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과 '기업의 존립 위태'라는 신의칙 적용 근거에 대해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한 내용"이라고 했다. 이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 돼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이를 인정할 땐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므로, 최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재판부는 대신 노사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정된 금액을 노사 간 합의로 분할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온 노사관계를 고려하면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 발생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신의칙에 대해 노사가 판결 이후 합의해 나갈 사항을 법원이 회사의 사정을 고려해 판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같은 시각을 반영해 법원은 법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이후 노사가 협의를 통해 조율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선고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다.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1·2심 결론이 엇갈리고 있어 최종 결과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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