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전담조직 ‘기업집단국’ 부활“4대 그룹, 개혁의지 보여라” 압박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불공정개혁’에 나서자, 산업계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시장의 파수꾼 역할보다는 ‘경제검찰’로 변모하면서 급진적 시장 개혁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5일 민간경제연구소와 재계 등에 따르면 대기업 전담조직인 기업집단국이 꾸려지면서 정부 주도의 급진적 ‘관치(官治) 시장’ 개입이 우려되고 있다. 기업집단국은 과거‘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던 공정위의 조사국 부활을 의미한다. 이 조직은 기업조사업무와 더불어 사실상 기업 환경을 바꾸는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선봉대로 보고 있다.
특히 공정위 에이스로 불리는 신봉삼 국장을 기업집단국장에 앉힌 것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국장은 공정위 내부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원칙주의자다.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일성에서 “4대 그룹을 찍어서 몰아치듯이 (재벌개혁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때려잡기식 기업 제재의 우려를 불식시킨 바 있다. 각종 외부행사나 인터뷰를 통해서도 원칙과 현실 사이의 균형추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김상조 위원장의 재벌개혁 구상은 기업집단국 출범으로 본격화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뿐만 아니라 경제개혁의 큰 울타리를 그리고 있는 현 정부의 선봉장 역할을 기업집단국이 맡을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몰아치듯 할 수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압박성 경고가 이를 방증한다.
올해 12월까지 긍정적 변화의 모습이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밖에 없다 는 경고성 시그널은 사정 후폭풍의 ‘1차 데드라인’으로 통한다. 4대 그룹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 행보가 물 밑에서 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얘기다.
김상조 위원장은 또 가맹·유통·하도급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그러나 급진적인 추진력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초반과 달리 재계의 반발도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갑질 분야를 정조준한 초기 때에는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과도한 조치라며 가맹본부업계가 반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언락폰(공기계)과 관련한 담합 조사 방침을 시사하면서 이통사와 제조사 측의 불만도 거세다. 국내 언락폰 가격과 일부 국가의 조건을 단순 비교해 ‘담합’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시장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무엇보다 기업 길들이기를 위한 ‘기업분할명령제’ 검토와 관련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업분할 명령제는 규제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법원에 기업을 쪼개도록 하는 제도다.
시장 독과점의 폐해가 심할 경우,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통한다.
이를 놓고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강한 반발이 나오자, 김 위원장은 ‘당장 서둘러서 해야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공정거래정책에 정통한 한 경제전문가는 “경제개혁의 적절한 균형추를 약속했던 초반과 달리 급진적 개혁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과거 정부처럼 ‘기업의 팔 비틀기’를 통한 손쉬운 정책실현은 자칫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공정위의 역할은 경제검찰이 아닌 균형추를 맞추는 파수꾼 역할”이라고 조언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인 기업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최근 미국 보호무역주의나 북한 핵리스크, 중국 사드경제보복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점을 충분히 감안해 합리적인 기업정책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