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패러다임 시프트] 재무조정 ‘서울 어프로치’ 안 통해… 사업구조조정 함께 해야

입력 2017-10-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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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실패,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상선은 2003년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10년 만에 다시 위기를 겪는다. 당시 유코카캐리어스 등 알짜 자산을 매각했고, 2013년부터는 LNG선, 벌크선, 현대증권, 부산신항만 터미널 지분 등 추가로 돈이 될 만한 자산을 매각하며 살아남았다. 한진해운은 스스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국 파산절차를 밟았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해양은 채권단의 채무재조정, 신규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진다. 정부는 결국 공적자금을 다시 투입했다. 금호타이어는 2010년 워크아웃 돌입 후 2014년 졸업했지만 2017년 또 한 번 기로에 서 있다. 대기업이 위기를 겪을 대마다 정부(채권단) 주도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지만 그 효과는 없는 셈이다.

이투데이는 2017년 창간 7주년을 맞아 현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진단해 본다.

◇20년 매너리즘에 빠진 ‘서울 어프로치’…유동성 확보는 1990년대 해답 =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 역사는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시작한다. 한국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의 ‘런던 어프로치’를 모델로 삼아 구조조정 매뉴얼을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를 설립해 금융감독 권한과 기업구조조정 총괄 기능을 부여했다. 중앙은행이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런던 어프로치와 결정적인 차이다. 그러나 ‘유동성 확보’라는 구조조정의 전제는 같았다.

이헌재 초대 금감위원장은 기업 구조조정 5대 원칙(△기업경영 투명성 강화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역량 강화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 강화)을 만들었다. 동시에 기업구조조정 실행 3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기업 스스로 한다. 둘째,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셋째, 수단은 은행을 이용한다는 내용이다. 원칙적으로 구조조정은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채권은행과 기업의 합의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금융기관을 지원하고, 채권은행은 정부 대신 기업과 주거래은행의 재무개선약정 체결을 통해 기업 구조개혁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기업의 빚은 일부 탕감해 주고, 채권단이 전문가를 부실기업 경영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두고 “‘일단 살고 보자’는 기업과 ‘일단 살려서 나중에 빚을 받아내자’는 채권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지주형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에서 “은행과 재벌 모두 가능한 한 약한 처방에 합의하는 경향이 있었고 채권은행은 부실기업의 경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그것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높은 금리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정부의 개입으로 진행된 금융 주도 구조조정에서 사업을 포기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한 재벌은 살아남고, 사업을 확장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재벌은 도태되거나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2016년 현대상선, 한진해운 구조조정 때 정부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협의체’ 3차 회의를 통해 △경기민감업종 △공급과잉업종 △상시적 구조조정 등 3트랙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도 서울 어프로치를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이 ‘엄정평가·자구노력·신속 진행’이라는 구조조정 원칙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의 일성에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재계 및 시장 관계자들은 그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구조조정의 전제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산업은 ‘태생기-고도성장기-성숙기-쇠퇴기’의 사이클을 가진다. 20년 전 한국 재벌들은 고도성장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주요 산업이 쇠퇴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치킨 게임이 발생하는 시기에 맞게 정책 전략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원칙을 강조하며 해운사를 정리한 것은 ‘유동성 확보’라는 과거 구조조정 프레임에 입각한 것”이라며 “지금은 ‘쇠퇴기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구조조정은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이 자산매각 자구안을 제출하면(산업은행이 자구안을 승인하면)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통해 채무재조정·신규자금 지원에 나섰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은 소극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은행은 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 채권 일부를 포기하거나 채권 회수가 늦어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곧 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 들어간 STX그룹, 금호그룹(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금호석유화학, 금호타이어), 동부그룹,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가운데 구조조정을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곳은 금호그룹뿐이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1990년대까지 대기업들은 주로 은행 여신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했으나 2000년대 이후 자본시장에서 직접 회사채, CP 등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한다. 금리, 신용 등의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채권단의 경영권 간섭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모두 비협약채권 규모가 협약채권보다 높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즉, 정부가 산업은행을 끼고 채권은행과 기업을 조율하며 구조조정을 주도하기 어렵게 됐다는 의미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은 부실기업의 재무구조조정만으로도 충분한 환경이었다”며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무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사업구조조정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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