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이야기] 역사에 ‘평화’를 서명하다

입력 2017-10-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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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만년필은 1883년 미국 뉴욕에서 보험외판원을 하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1837~1901)이 만들었다. 그래서 중요한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도 역시 미국과 관련돼 있다.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을 마치고 국가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는데 만년필 역시 그 와중(渦中)에 등장하였다.

1898년 쿠바 독립운동을 계기로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했다. 내리막의 스페인은 날로 강해지던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전쟁은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해 12월 파리에서 조약을 맺게 된다. 이 조약의 서명에 파커 만년필이 사용된다. 잉크가 새는 것을 방지하는 연결 부위가 없다는 뜻인 조인트리스(Jointless) 만년필이었다. 업계의 2등이었지만 파커는 이렇게 미국이 자랑하는 1등 만년필 워터맨과의 틈을 직관적인 작명으로 메우고 있었다.

1900년대 초 워터맨의 전미(全美) 점유율은 절반을 넘었다. 유럽 등 다른 곳에서 만년필은 얼마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점유율이 전 세계 점유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워터맨이 첫 ‘Peace Pen’(조약 등에서 서명에 사용된 만년필)의 영광을 놓친 것은 창업자 1대 사장이 뛰어난 발명가였지 수완 좋은 장사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사는 2대 사장인 그의 조카 프랭크 워터맨이 잘했다. 그는 사장이 되자마자 지구본 형태의 상업로고를 만들고 금펜촉을 만드는 회사도 인수하였다. 이런 준비를 마치자 기회는 곧 생겼다.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진 것이다.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講和條約)이 맺어졌다. 이 기회를 프랭크가 놓칠 리 없었다. 워터맨사 만년필이 조약의 서명에 사용된 것이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강화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에서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가 금으로 만들어진 워터맨 만년필로 서명하면서 워터맨은 정점(頂點)을 맞이한다.

▲1899년 파커 광고.

1920년부터 1940년까지 약 20년간을 만년필의 황금기로 부른다. 바꾸어 말하면 워터맨의 독점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쉐퍼, 파커의 약진(躍進)이 시작되었고 워터맨은 기울기 시작했다. 황금기는 ‘다른 행성에서 온 펜’이라는 별명이 있는 현대 만년필의 시작 ‘파커 51’의 출시로 막을 내렸다.

너무 잘 팔려 사과 광고를 낼 정도로 성공한 파커 51은 오를 수 있는 모든 자리를 정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전선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항복문서에, 태평양 전선의 일본의 항복문서에도 파커51이 등장했다. 그리고 1953년 한국전 정전협정(停戰協定)에 서명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도 그걸 들고 있었다.

파커51 이후 만년필은 기나긴 침체에 들어갔다. 볼펜이 등장했고 베트남전, 오일 쇼크 등으로 사람들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만년필은 비싼 필기구이다. 여유가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거노믹스로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일본도 호황을 맞이하자 만년필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팔리기 시작하니 좋은 신제품이 나오고 이것이 몇 번 반복되니 새로운 명작이 즐비해졌다. 부활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냉전(冷戰)의 끝 독일 통일에 또 하나의 위대한 만년필인 ‘몽블랑 149’가 서명에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언제가 될까? 덧붙여 한국에서 만든 만년필로 서명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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