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인상’ 소수의견에 채권금리 폭등… 증권사, 초장기물 과도한 베팅 ‘부메랑’
채권시장은 지난달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전달 19일 열린 한국은행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일형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내놓으면서부터 채권 금리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7거래일 동안 무려 22.9bp(1bp=0.01%포인트)나 올랐다.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는 곧 가격 폭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은 기준금리(1.25%)와 국고채 3년물간 금리차도 전월 26일 93.2bp까지 벌어지며 2011년 3월9일(108bp) 이후 6년7개월만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은의 금리인상을 두 번 가량 반영한 수준이다.
채권시장의 이 같은 발작은 지난달말 기획재정부가 국고채 30년물 입찰 물량을 늘리고 한은이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하는 시장안정화조치로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다. 다만 불안감이 여전한데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도 본격화하고 있어 재연 가능성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상치 못했던 인상 소수의견, 내용상으로는 4대 3 동결 = 채권시장의 긴축발작은 우선 예상치 못했던 인상 소수의견에서부터 출발한다. 이투데이가 한은 10월 금통위를 앞두고 채권시장 전문가 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일부(3명)가 인상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주류의 시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한은의 금리인상 시기를 일러야 내년 1분기(1~3월)로 예상했었다.
금융투자협회가 채권시장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전원이 기준금리 동결을 전망했었다. 이 조사에서는 채권시장 참여자 71개 기관 100명이 응답했다. 2006년 1월부터 시작한 금투협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전원이 동결을 응답한 횟수는 총 12번. 이중 지난달 금통위를 제외한 11번 모두가 만장일치 동결이라는 결과로 귀결됐었다.
인상 관련 소수의견이 나온 것은 2011년 9월 당시 김대식 위원과 최도성 위원이 인상을 주장한 이래 6년1개월만이다. 아울러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에서 3.0%로 올려 잡은데다 이주열 한은 총재의 금통위 기자회견도 꽤나 매파(긴축)적이었다는 점에서 채권시장 충격은 컸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0%로 높였고 물가상승률은 목표수준에 부합하는 2%로 예상한다. 이렇게 보면 금융완화 정도를 줄일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돼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 총재가 기존에 언급했던 “통화정책의 완화정도를 축소 조정할 가능성” 등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인상 소수의견이 한명에 그쳤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동결 4명대 인상 3명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영향을 줬다. 8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윤면식 부총재로 추정되는 위원은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축소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상 소수의견은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한 세 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다. 일단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즉답을 피했다.
아울러 매파적인 금통위원은 더 있다. 신인석 위원도 9월말 출입기자 오찬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현재의 통화정책은 완화적이라고 평가한다. 비록 중립금리가 하락했지만 현재 기준금리는 충분히 낮아 중립금리를 하회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해 매의 발톱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은 한은의 금리인상 시점을 올 11월로 빠르게 조정하는 모습이다. 상당수 채권 연구원(애널리스트)들도 10월 금통위 후 보고서를 통해 금리인상 시점을 11월로 수정 발표했다.
◇과도했던 스티프닝 포지션 화 자초 = 금리인상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채권시장에서 금리상승을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국고채 30년물을 매도하고 국고채 10년물이나 5년물 혹은 3년물을 매수했던 일드커브 스티프닝(수익률곡선 가팔라짐, steepening) 포지션에 직격탄을 날렸다. 금리상승 과정에서 이같은 포지션에서 손절 물량이 쏟아졌고 이는 다시 금리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 고리를 자초했다.
그렇다면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왜 국고채 30년물을 기반으로 한 스티프닝 포지션을 구축했을까? 채권시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우선 국고채 30년물과 여타 중단기물 금리간 격차가 너무 좁혀졌었기 때문이다. 실제 국고채 30년물과 10년물간 금리차는 9월27일부터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기재부가 9월13일 올해 국고채 50년물 추가 발행을 공식 포기한 때문이다. 50년물 발행에 대비해 포지션을 비웠던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장기투자기관들 사이에서 국고채 30년물을 부랴부랴 담기 시작했다.
이후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금리차가 비정상적으로 좁혀졌다는 이유로 스티프닝 포지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고채 30년 지표물 17-1호(2017년 첫 번째 지표물) 대차잔량의 급격한 확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고채 30년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증권사로서는 스티프닝 포지션 구축을 위해 국고채 30년물을 빌린 후 매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실제 기재부가 국고채 50년물 추가 발행을 포기하기 직전 시점인 9월13일 1조4207억 원이었던 17-1호 종목 대차잔량은 한은 10월 금통위 직후인 지난달 23일 2조2597억 원까지 늘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8390억 원이나 급증한 셈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10월 발표할 가계부채 종합대책에서 비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안심전환대출이 포함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때문이다. 2015년 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안심전환 대출이 등장하면서 장기금리 상승은 물론 채권과 이자율스왑(IRS) 금리간 격차인 본드스왑 스프레드의 급등락에 불을 붙인 전례가 있었던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당시 20조 원 규모로 진행됐던 안심전환대출 물량은 수요가 몰리면서 34조 원이 소화됐고, 이들 모두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으로 채권시장에 쏟아졌다.
당국은 지난달 24일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 12월에 정책모기지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물량은 5000억 원에 수요 등을 봐가며 확대 추진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물량이 예상보다 적었다는 점에서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이같은 베팅에는 과도한 탐욕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자금을 바탕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증권사로서는 채권의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가 긴 초장기물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 국고채 30년물의 듀레이션은 20년에 달하는 반면, 5년물은 4.5년 정도다. 단순계산해 금리 1bp가 오를 때 30년물이 5년물보다 4.5배 더 손실을 보는 셈이다. 그만큼 투자에 위험성이 내포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