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아틀라스’의 쓰러진 고목-들들 볶인 기업인들의 파업

입력 2017-11-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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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부의 기업 볶기’가 실린다. 가장 최근 것은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씨의 발언이다. 2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 늦게 참석한 그는 “재벌들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같잖은 말이다.

절세(絶世)의 절세(節稅) 기법으로 비난받는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홍종학 씨는 교수일 때 재벌을 암세포에 비유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었을 때는 “재벌을 봐줘야 할 이유가 뭐냐”며 면세점법 개정안을 밀어붙여 내로라하던 면세점 몇 개의 문을 닫도록 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을 실직자로 내몰리게 했다. 기업인들이 그의 장관됨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김상조 씨와 홍종학 씨 같은 사람들의 이런 발언과 행동은 1957년에 나온 에인 랜드(Ayn Rand, 1905~1982)의 대하소설 ‘아틀라스(Atlass Shrugged)’의 다음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그 떡갈나무는 땅속으로 뻗은 뿌리가 언덕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서 거인이 나무 끝을 잡고 흔들면 실에 매달린 공처럼 언덕과 지구 전체가 흔들릴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닥쳐도 꿈쩍하지 않을 그 떡갈나무는 가장 위대한 힘의 상징이었다.

어느 날 밤, 그 떡갈나무가 번개를 맞았다. 떡갈나무는 두 동강이 난 채 쓰러졌다. 검은 터널 입구를 들여다보듯 살펴본 나무속은 오래전에 썩어 없어졌고, 약한 바람에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잿빛 먼지만 남아 있었다. 나무의 생명력은 사라졌고 뒤에 남겨진 형체는 생명력 없이는 지탱할 수가 없었다.>

세 권인 번역본 제 1권 도입부에 나오는 이 구절은 길고 긴 ‘아틀라스’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총 2700쪽이나 되는 이 소설의 줄거리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생산 없는 분배, 발전보다는 평등주의가 지배하는 미래 어느 날의 미국. 권력은 무능한 정치가와 이상만 좇는 지식인들, 목소리 큰 선동가들(그중 일부는 부패했다)의 수중에 들어간 지 오래이다. 그 결과 경제는 만성적인 불황에 허덕이게 되고, 기업인들은 견디다 못해 하나둘 콜로라도 산 속 깊은 곳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것에 매진하며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는 삶을 산다.>

▲에인 랜드
에인 랜드의 ‘고목’은 포퓰리즘 때문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기업인을 죄인으로 여기는 나라, 기업인들이 파업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 나라를 상징한다. 기업인들이야 콜로라도든 하와이든 스위스든 자기네 좋은 곳을 찾아 거기서 자기네 세상을 다시 만들거나 어울려 살 수나 있지, 이 나라 숱한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어떻게 하나. 그냥 앉은 채로 다가오는 운명을 맞는 수밖에 없나? 답답하지만 답이 없다.

에인 랜드는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똑똑한 유대인 여학생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의 모순과 그것이 가져온 비극을 몸으로 겪었던 그는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으려던 1950년대 초반 미국 사회에 보낸 경고로 해석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사악하게 옹호한 소설’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영국 BBC는 지난 세기말 이 소설을 “성경 다음으로 미국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요즘도 매년 수만 권이 팔린다.

이 글을 쓰던 날 아침 신문에 “경제는 명령으로 안 돼… 한국 최대 경쟁 저해 사범은 정부”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 대상은 전직 고위관료. ‘기업에 좋은 게 국가에 좋고, 국가에 좋은 게 기업에 좋다는 기업형 국가를 줄곧 말해온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었다. 혹시 그가 ‘경제’라고 말한 것을 기자가 잘못 듣고 ‘경쟁’이라고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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