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손자나 손녀에게 증여하는 것을 세대를 거른 증여라는 의미로 '격세(隔世) 증여'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증여했다면, 아들이 다시 손자, 손녀에게 증여해야 하므로 2번의 증여가 이뤄지고 증여세도 2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격세 증여'를 하게 되면, 증여가 한 번만 이루어지고 증여세도 한 번만 내면 되므로 상속을 위한 절세 수단으로 많이 이용된다. 다만 '격세 증여'의 경우에는 증여세를 한 번만 내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산출세액에 30%를 추가한 세금을 납부하게 하고 있다.
기업가들이 주식을 물려줄 때도 이러한 '격세 증여'가 많이 활용된다. 최근 보도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삼양그룹 김상하 회장은 장남과 차남에게 삼양홀딩스 주식을 증여했는데, 손녀에게도 1만 5,000주, 두 명의 손자에게도 각 1만주씩 증여했다.
'격세 증여'는 유류분 반환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유류분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지 못한 상속인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많이 받은 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재산 중 일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런데 우리 민법과 판례는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은 사람이 상속인인지, 제3자인지에 따라 유류분 반환 의무를 지는지 여부를 다르게 정하고 있다. 상속인에게는 아버지로부터 언제 재산을 받았는지 상관없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반면, 제3자에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이전에 받은 재산에 대하여는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2016년 1월에 돌아가신 경우 상속인인 아들은 2000년 1월에 증여받은 재산도 유류분 반환을 해야 하고, 상속인이 아닌 지인은 2014년 1월에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유류분 반환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이전에 손자, 손녀 이름으로 증여를 받는다면 유류분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손자, 손녀는 아버지의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이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증여를 받는 것이면서 손자, 손녀 이름으로 증여를 받는 방법으로 유류분을 피하는 것이 유류분을 반환받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서 우리나라 법원은 증여가 이루어진 과정, 증여된 물건의 가치, 증여를 받은 사람과 관계된 상속인이 실제 받은 이익 등을 고려하고 있다. 비록 손자나 손녀에게 증여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 상속인인 아들에게 증여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를 아들이 증여를 받은 것으로 보고 아들에게 유류분을 반환하도록 판결하는 것이다.
△증여를 받은 손자나 손녀의 나이가 너무 어린 경우 △아버지가 다른 손자, 손녀에게는 증여하지 않았는데 유독 특정한 아들의 자식인 손자, 손녀에게만 증여한 경우 △손자, 손녀가 증여받은 재산에서 나온 이익(이자, 임대료 등)을 실제로는 아들이 사용한 경우라면, 비록 손자, 손녀 명의로 증여를 받은 것이라도 아들이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유류분 반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