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 불안정·물류 高비용 난제 산적…정부·학계 나서서 공동 대응책 마련해야
동남아를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신(新)남방정책’을 천명하자 현대자동차, 롯데 등 재계가 잇따라 아세안 시장 개척에 나서겠다며 동참하고 있다. 롯데는 해외 전체 매출 등 동남아 시장 비중이 50%를 넘자 신성장동력으로 아세안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도 인도네시아를 생산 거점으로 하는 300만 대(연간 신차 판매량) 정도의 아세안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또 CJ는 베트남·인도네시아에 공격적 투자를, 신세계는 이마트 베트남 매장 확대 등 한국 기업의 아세안 진출이 쇄도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과의 사드 갈등에서 드러났듯이 ‘기회의 땅’ 중국이 한국 기업의 무덤으로 변할 수도 있는 만큼 동남아 진출이 결코 황금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한 전력 수급, 높은 물류비용 등 한국 기업 투자 진출에 걸림돌도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한·아세안 미래 공동체 구상 첫 발표= 아시아 순방 중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 기업투자서밋(ABIS)과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리 정부의 아세안 협력 비전인 ‘한-아세안 미래 공동체 구상’을 처음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양국 국민이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한·아세안 미래 공동체의 목표로 ‘더불어 잘사는(Prosperity), 사람 중심의(People) 평화(Peace) 공동체’ 구현을 제시했다.
이번 미래 공동체 구상에서 주목할 점은 실현 방안으로 4대 중점 협력분야를 제시해 그동안 문제가 됐던 아세안 진출 걸림돌을 정책적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4대 중점 협력분야는 △한국과 아세안의 사람과 상품의 원활한 교류를 위한 ‘교통’ 분야 △경제 발전의 기초인 ‘에너지’ 분야 △전력 공급, 재난 예방, 기후변화 대응에 필수적인 ‘수자원 관리’ 분야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스마트 정보통신’ 분야다. 이는 아세안 진출의 고질적 걸림돌로 지적됐던 도로·항만·공항 등 사회 인프라 투자의 부족으로 높아진 물류비용과 비싼 전기료, 산업용수 가격, 불안정한 전력수급 등을 먼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ABIS에서 “한국의 글로벌 인프라 펀드에 2022년까지 1억 달러를 추가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2019년까지 현재 연간 700만 달러에서 두 배로 증액하고, 한·메콩 협력기금과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협력기금에 대한 정부 출연도 대폭 확대해 2020년까지 상호 교역 규모 20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범정부 아세안 기획단’을 설치하고 아세안 주재 재외공관의 기업 지원 기능, 조직도 강화하겠다”며 “임기 중에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고 약속해 신남방정책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아세안 진출 난제 많아…정부·학계 나서야= 문 대통령은 아세안 진출 확대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아세안 지역이 ‘기회의 땅’이 되기에는 난제가 쌓여 있다. 앞서 언급된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과 값비싼 전력·산업용수 비용, 높은 물류비용뿐만 아니라 낮은 노동생산성, 아세안 국가 간 경제 격차, 미흡한 행정·법률 체계 등 걸림돌이 많아 한국 기업 진출에 장벽이 되고 있다.
당장 현대차가 베트남에 이어 새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세제 혜택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이미 일본이 98%를 점유하고 있어 시장 공략이 힘들다.
동남아 순방에 동행하고 있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 브리핑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의 주력인 1500㏄·5도어·해치백 등은 세제 혜택이 많고, 우리는 1600㏄·4도어 중심이어서 시장 진출을 위한 국가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1500㏄나 5도어에 대한 세제 혜택은 우리가 진출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고 인구 절반 이상이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아 전자상거래 진출이 힘든 데다 높은 규제로 인한 금융권 진출도 사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무작정 아세안 국가의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보고 생산기지에 뛰어들어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데다 숙련 노동자로 키운다고 해도 이직률이 높아 현지 진출 기업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임금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단순히 인건비에 기댄 생산기지 이전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밖에 종교, 언어, 종족의 다양성과 아세안 국가 간 발전 격차도 회원국 간 갈등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어 자칫 투자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또 세금·조세·관세 등의 비효율적 체계, 부동산 취득의 어려움, 공무원 부정부패 등도 걸림돌이어서 문제로 꼽힌다.
김병권 코트라 글로벌전략지원단장은 “이러한 걸림돌이 개별 기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정부 관계기관과 학계가 모여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공동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