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일본’이 조작의 늪에 빠졌다. 고베제강과 미쓰비시머티리얼에 이어 28일(현지시간)에는 화학섬유업체 도레이가 품질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회사인 도레이 하이브리드 코드(THC)가 제품 데이터를 조작해왔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2016년 7월에 파악했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바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은 고베제강과 미쓰비시머티리얼에 이어 탄소섬유 분야에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던 도레이마저 품질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산에 대한 불신이 한층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THC가 품질 데이터를 조작한 건 ‘타이어 코드’라 불리는 자동차 타이어용 섬유 보강재 및 자동차용 호스와 벨트 등 3개 품목이다.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이 도레이 사장을 맡고 있던 2008년 4월부터 조작이 시작돼 작년 7월까지 약 8년간 149건, 약 400t에 대해 품질 조작이 이뤄졌으며, 이런 제품은 자동차 관련 업체 등 총 13개사에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령 위반은 아니며, 다른 제품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품질보증실장 2명이 검사 공정에서 타이어코드 등의 강도를 나타내는 ‘강력’이 258뉴턴이라는 수치가 나왔음에도 고객과 계약한 수치인 260뉴턴으로 변조했다고 한다.
THC의 스즈키 노부히로 사장은 “해당 실장들은 ‘규격에서 벗어난 수치가 근소한 차이이며 품질에는 문제 없다’고 말했다. 복잡한 작업을 생략하고자하는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규격에서 벗어나더라도 고객의 동의가 있으면 출하할 수 있는 ‘특별채용’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해당 실장들이 그 동의를 받지 않고 출하한 것이 문제라고 스즈키 사장은 설명했다.
품질 조작 발표 시기가 1년 넘게 늦어진 것에 대해 닛카쿠 사장은 “11월 초에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길래 소문으로 퍼지는 것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제서야 공개한 이유를 해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카쿠 사장의 발언에 대해, 건수가 적은데다 타이어와 자동차 안전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내용도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며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았다.
앞서 고제제강은 일본 국내외 17개 공장과 자회사에서 품질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을 들통나 파문을 일으켰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자회사 미쓰비시신동이 마찬가지로 제품 검사 데이터를 조작했다. 고객과 계약한 제품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크기와 경도 등을 위조했다. 심지어 미쓰비시는 조작 사실이 발각된 후에도 문제의 제품을 계속 출하했다.
제품의 품질 데이터 조작 외에 자동차업체들은 품질 검사에서 부정 행위를 한 사실이 발각됐다. 닛산자동차와 스바루는 검사 자격이 없는 직원이 완성차를 검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품질을 갖춘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자만심과 그것을 묵인해온 거래처의 동료 의식의 일본 기업들의 부정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 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비즈니스 관행이라며 사회적 책임과 기업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ESG 투자’가 조류인 가운데 일본 제조업 브랜드가 땅에 떨어지면 투자자들로부터도 외면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