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발생하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 안 나와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겨눈 가운데 성추행이 사회·경제적 비용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투 캠페인은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으로 촉발됐다. 이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IT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성추행·성희롱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속출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7 올해의 인물’에 미투 캠페인과 관련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불특정 다수 여성이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 11일(현지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성들이 뭉쳤다. 16명의 여성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행 의혹을 의회가 나서서 공식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직 대통령까지 궁지에 몰릴 정도로 미투는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성추행이 만연했다는 의미다. 작년 미국 고용기회균등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여성 중 85%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성추행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인 동시에 조직과 경제 전체에 엄청난 비용을 부담케 하는 악이라고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분석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의 헤더 맥러플린 사회학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성희롱을 당한 여성 중 80%가 2년 내에 직장을 옮겼다고 분석했다. 반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여성은 같은 기간에 절반만이 직장을 옮겼다. 연구 통계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직장을 옮길 확률이 6.5배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대선 후보일 때 TV 프로그램에서 ‘이방카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다면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그는 “다른 직장을 찾으라고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미국에서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반영한다고 맥러플린 교수는 꼬집었다. 즉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퇴사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성희롱이 주는 스트레스는 부상이나 질병, 폭행 부정적인 사건이 주는 압박과 유사하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퇴사를 결정하게 하는 이유일 수 있다고 맥러플린 교수는 진단했다.
문제는 인재를 놓치는 비용에 더해 성추행 문제를 기업이 제대로 뿌리뽑지 않으면 가부장적인 문화가 알게 모르게 조직을 망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문제는 권력관계를 전제로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권력이 수평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성희롱 문제가 공론화되고서도 피해자가 회사를 나가는 방식으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맥러플린 교수는 성희롱을 당하지 않은 여성들도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려 애쓰는 이유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성희롱이 발생해도 쉬쉬하는 분위기이거나 묵인된다면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따라서 성희롱 문제가 폭로되면 조직은 피해 여성이 조직을 떠날 것을 기대하거나 가해자를 단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었던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추가적인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