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가상화폐 대책,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입력 2017-12-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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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제법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자. 1929년 어느 날,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는 구두를 닦기 위해 길 모퉁이의 구두닦이를 찾았다. 의자에 앉자 곧바로 구두닦이의 조언이 시작됐다. 이 주식을 사라, 저 주식을 사라.

구두를 닦은 후 그는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소유했던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실물경제나 기업의 경쟁력을 제대로 파악할 리 없는 구두닦이까지 주식을 하는 판, 주가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폭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식시장은 얼마 가지 않아 내려앉았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한때 400 가까이 올라갔던 다우존스 지수는 그해 10월 29일 290으로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32년에는 41까지 떨어졌다. 미리 주식을 팔아치운 조셉 케네디는 상대적으로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가상화폐 바람이 거세다. 몇 배, 몇 십 배 올랐다는 이야기에 가상화폐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중ㆍ고등학생과 직접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없는 노인들까지 뛰어들고 있다. 때로 하루 거래량이 10조 원 이상,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친 주식 거래 금액을 뛰어넘는다. 조셉 케네디와 그의 구두를 닦던 구두닦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오를 수 없는 정점이라는 말인가? 글쎄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가 결국은 ‘쪽박’을 차고 말았던 ‘만유인력의 법칙’의 뉴턴이 말했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해내는 나도 돈을 좇는 인간의 광기 앞에서는 별 수가 없다.” 그렇다. 투기시장의 움직임을 누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겠나. 더욱이 저금리에다 유동성이 넘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명백한 ‘투기장세’인 만큼 그 속에 있을 수 있는 거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트코인만 해도 코인의 수가 한정돼 있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의 수는 한정돼 있지만 전체 가상화폐의 양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더 높은 기술과 신뢰를 가진 가상화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신뢰가 높은 기관이나 기업이, 심지어는 어떤 국가가 새로운 가상화폐를 내놓을지 어떻게 알겠나. 그게 시장이고, 또 가상화폐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투기 억제를 위해 미성년자 등의 가상화폐 거래 계좌 개설을 제한하고 금융기관의 가상화폐 거래 및 보유를 금하는 한편, 거래소 설립의 기준과 그에 대한 감독을 엄격히 해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방어적 조치를 취한 셈이다.

그러나 걱정은 여전하다. 우선 정부의 정책이 왔다 갔다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달리 그런 게 아니다. 방어적 조치를 취했을 뿐 가상화폐를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 또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등에 대한 기본 입장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대책이 왔다 갔다 하면 가상화폐의 가격 또한 그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게 된다. 투기도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다. 세계가 하나가 돼 움직이는 시장이라 우리 정부의 정책적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또한 꼭 그렇지가 않다. 해외 시장과 국내 시장의 가격 차이에서 보듯 국내 시장이 일정 부분 독자성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내림이 심한 경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까? 부동산 등 다른 정책 영역에서도 그러하듯 자본력과 정보력을 갖춘 사람들은 얻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잃는다.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정책이 어쩌다 뛰어든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보다 명확한 입장과 일관된 정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가상화폐는 어떠한 형태로건 나름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돈 또한 지속적으로 몰려들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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