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삼성 측은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에 빗대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검팀은 27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이같이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66) 전 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63) 전 차장,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황성수(56)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 등에게서 78억9430만 원을 추징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박영수 특검은 이날 직접 나서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정의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재판에 임했다"며 "재벌의 위법한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 총수와 정치 권력 간 돈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특검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줄곧 혐의를 부인해 온 이 부회장 등을 비판했다. 그는 "최순실(61) 씨에게 고가의 말을 사주고 재단에 거액의 계열사 자금을 불법 지원한 것을 '사회공헌 활동'이라 주장하는 것은 사회공헌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특검은 "대통령과의 부정한 거래를 통해 삼성물산 합병을 성사시켜 이 부회장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은 뇌물의 대가"라며 "초일류기업 삼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삼성은 이 부회장 개인이 아닌 국민의 기업"이라며 "주주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 구형 직후 삼성 측은 "(이 부회장 등이) 국정농단 본체나 주범이라고 하는 것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칭하는 바와 다를 바 없다"며 "대통령 요청에 수동적으로 응한 기업인들을 국정농단 주범이라고 하니 '주객전도'"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 당시 현안을 해결하려는 '청탁' 자체가 없었다고도 재차 주장했다. 변호인은 "삼성은 어떤 건의사항도 작성하지 않았고 (독대 당시) 청탁은커녕 현안 언급조차 없었다"고 했다. 단지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서 문화융성과 스포츠 지원을 요구받고 돈을 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1심에서 인정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호인은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이 없었다면서도 포괄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 했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으로 보인다"며 "(1심 판결은) 죄형법정주의에 명백히 반한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 부친 이건희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역임해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장기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며 "삼성은 스포츠 발전 국위 선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며 양형 부당도 주장했다.
이 부회장 등은 박 전 대통령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청탁을 한 뒤 그 대가로 최 씨 딸 정유라(21) 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는 등 총 433억2800만 원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승마지원금 73억 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준 16억 원 등 총 89억 원을 뇌물로 보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