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
상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상가시장에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며 ”상가 임대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책들을 조속히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임대료 인상 상한을 기존 9%에서 5%로 인하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입법예고 했고, 이달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주문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한 보다 강력한 추가대책을 추진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또 “영세사업자들에게 임금보다 더 큰 압박을 주는 상가 임대료”라고도 표현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상가시장 구조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으로 들렸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말이 생겨났듯, 언제부턴가 상가 건물주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실제로 건물주가 전지전능한 조물주처럼 임대료를 멋대로 주무를 수 있을까?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임대료 이전에 상가 매입가격이 있고, 그 이전에 토지가격과 건축비가 있다. 임대료가 수차례의 수급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산물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생겨난 임대료는 이후의 임차수요를 반영하면서 가격 변동을 거친다.
그런데 앞 뒤 맥락 없이 “상가 임대료가 높다”고 단정 짓는다면, 임대인 입장에서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상가 임대수익률은 연 4~5% 선이다. 10억짜리 상가를 통해 세전수익으로 매월 400만원가량을 버는 셈이다. 주택이나 오피스 등 여타 부동산의 임대료와 비교해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한 상가의 매출액에서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입지나 업종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적정 임대료라 하면 매출액의 10~20% 선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월 매출 2000만원 정도를 거두는 자영업자가 매월 200만~400만원의 임대료를 낸다면 적정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이 임대료를 시각에 따라서는 “비싸다”고 할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임금에 비해 과도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신도시나 택지지구처럼 상가가 신규 공급된 지역은 더욱 특수한 시장이다. 애초에 상권 기반이 없어 임차인 유치가 어렵기 때문에 초기 임대료가 굉장히 낮게 책정된다. 그러다 차츰 상권이 무르익으면 임대료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20~30%씩 오르는데, 이것이 임대료 폭등으로 호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로 임대료 상한을 규정해버리면 거래 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임대수익은 한 푼도 못 받으면서 이자비용만 지출하는 ‘상가 푸어’를 양산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곤란하다는 견해다. 현 정부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상가 임대료 9% 인상은 과도하고, 최저임금 16.4% 인상은 정당한 것이 된다. ‘내로남불’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소상공인을 화나게 한 근본 원인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인지, 아니면 높은 상가 임대료인지. 왜 비난의 화살을 상가 임대인에게 돌리면서 그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가.
상가 임대인들은 이 말이 하고 싶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