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제록스 지분 50.1% 약 6700억 엔에 인수 계획…“사무기기 수요 줄고있지만 중국·인도 등 성장 기회 있어”
112년 전통의 미국 명문기업 제록스가 일본 합작사 후지필름홀딩스의 품에 안기게 됐다.
후지필름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제록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제록스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6700억 엔(약 6조5744억 원)을 차입해 후지필름이 보유한 자사주 75%를 전량 취득하고나서 제록스의 자회사가 된다. 이후 후지필름은 제록스의 제삼자 배정증자를 6700억 엔에 인수해 최종적으로 제록스 지분 50.1%를 확보하게 된다.
이로써 후지제록스와 미국 제록스의 경영이 사실상 통합, 전 세계에서 사무기기 사업을 일관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문서의 디지털화로 인한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112년 전통 제록스의 재건을 과거 기술지원을 받은 후지필름이 주도하게 된 셈이다.
후지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 최고경영자(CEO)는 “복사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매년 2%씩 판매가 줄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과 인도 등 성장할 수 있는 지역이 있다”며 “진정한 통합 경영으로 세계적인 전개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후지제록스는 1962년 후지필름과 제록스가 50%씩 출자해 설립됐다. 당시 후지필름은 제록스의 기술지원을 감지덕지하며 받는 처지였다. 그러나 제록스의 경영부진에 2001년 후지필름은 후지제록스 출자 비율을 75%까지 높였다. 제록스는 막강한 사무기기 지식재산권을 바탕으로 후지제록스에 출자 비율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번 인수로 후지필름이 사무기기 사업을 완전히 주도하게 됐다. 후지필름은 기초 연구로 정평이 난 제록스의 미국 팰로앨토 연구소도 손에 넣게 됐다. 지금까지는 후지제록스가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제록스는 미국 유럽 등 나머지 지역을 담당했지만 통합 이후에는 그런 제약이 없어진다.
새로 탄생하는 회사는 사명이 ‘후지제록스’로 변경된다. 후지필름은 제록스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유지하는 한편 제프 제이콥슨 제록스 최고경영자(CEO)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인수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이 기다리고 있다. 후지필름은 후지제록스에서 1만 개 일자리를 감원하고 일부 공장을 폐쇄하기 위해 4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책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록스는 1906년 사진 인화지 업체인 ‘할로이드’라는 사명으로 설립됐다. 이후 세계 최초로 상업용 복사기 출시에 성공했으며 사명도 지금의 제록스로 바꿨다. 복사기와 프린터 등의 성공에 힘입어 제록스는 오랜 기간 사무기기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클라우드 스토리지와 모바일 기기 등의 발전으로 사무업무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제록스는 지난해 기업서비스 사업부를 ‘콘두언트’라는 이름으로 분사시켰다. 인수 소식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세기 미국 산업의 강자가 더는 독립 회사로 남지 않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후지필름도 이번 인수로 위험한 베팅을 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후지필름은 사진필름 사업의 축소에 의약 등으로 거침없이 업태를 전환해왔는데 제록스 인수로 사무기기 비중이 너무 커지게 됐다. 2016년 후지필름과 제록스 매출을 감안하면 복사기와 복합기 등 사무기기 판매가 3분의 2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