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헌 수석부국장 겸 기업금융부장
열성 부모의 극성에 밤늦도록 학원가를 ‘뺑뺑이’ 도는 청소년들에게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면,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왜 명문 대학에 가려고 하냐고 물으면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서”란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20년간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좋은 직장’이라니,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아이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좋은 직장에 입사하겠다며 20여 년간의 입시 지옥도 버티며 열공하는데, 일명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는 힘 있고, ‘백(back)’ 있는 사람들의 자녀를 골라 입사시켰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체 1190개 중앙·지방 공공기관과 유관단체를 조사한 결과, 946곳에서 무려 4788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10곳 중 8곳에서 채용 비리가 이뤄지고 있었다니, ‘채용 비리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간 적발 건수가 이 정도인데, 조사 기간을 확대하면 얼마나 더 많은 채용 비리가 드러날지 의구심이 든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실태를 보면서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가 왜 후진국(52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것 같다. 공공기관들은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커트라인 늘리기, 면접점수 몰아주기, 면접위원 교체하기 등 각종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
또 유력인사의 자녀를 채용하기 위해 가점 대상자에게 점수를 안 주고, 경력도 없고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고위 인사 지인의 자녀를 특별채용했다. 심지어 채용시험에 응시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최종 면접 기회를 주고, 고위인사 지시로 특정인을 사전에 합격시킨 사례도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 였던 것이다.
은행 채용 비리는 ‘짬짜미’ 그 자체였다. 우리은행은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인사청탁이 들어오면 청탁자와 은행 내부 친·인척 명부를 작성해 서류전형이나 1차 면접에서 불합격하더라도 합격시켰다. 이런 수법으로 합격시킨 사람이 3년간 37명에 달했다.
하나은행은 일명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점수를 상향 조정하고, 전형공고에도 없는 글로벌 우대 전형을 만들어 해외 특정 대학 출신을 합격시켰다.
국민은행은 서류전형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 300명 중 273등 한 최고경영자(CEO)의 친척을 2차 면접에서 최고점수를 줘 합격했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채용 결과이지만, 은행들은 정황만 갖고 판단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하나은행은 SKY대 출신이 합격한 것은 주요 거래처이기 때문에 내부 규정상 채용 우대를 받게 돼 있고, 글로벌 우대는 종전에 있던 제도라며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실이 이러니,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올인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끝난 것 같다. 명문 대학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통계청의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고소득층의 교육비 지출이 저소득층의 9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높을수록 명문대 진학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익법인 동그라미재단은 소득 상위 10% 가구 자녀가 SKY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하위 10%의 5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자녀 교육을 잘 시켜 명문 대학, 좋은 직장에 취직 시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공공기관과 금융회사의 채용 비리처럼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의 자리를 탐하는 불공정 행위다.
청년실업 100만 명 시대에도 청운 (靑雲)의 꿈을 꾸며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