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출전한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기적의 맨발 샷’을 날린 모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은 열세에 몰린 상황에서 ‘할 수 있다’ 주문으로 승세를 잡아 역전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 동계올림픽 썰매 역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은 스켈레톤이라는 종목 이름조차 낯선 불모지의 국내 상황에서 맹훈련해 열매를 거뒀다.
재미있는 것은 세 명의 훈련, 멘탈 관리 방법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박세리 선수는 ‘하면 된다’의 담력(膽力, 배포)으로, 박상영 선수는 ‘할 수 있다’의 심력(心力, 가슴)으로, 그리고 윤성빈 선수는 ‘꿈꾸면 이루어진다’의 염력(念力, 머리·상상력)으로 멘탈 관리를 했다. 윤성빈은 수상 소감에서 “훈련 기간 내내 자기 전에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을 매일 했다”고 말했다.
매번 스포츠 스타의 성공담, 훈련담이 소개될 때마다 그를 따라 하려는 ‘○○○ 되기’신드롬이 발생한다. 대상이 되는 직원, 자녀는 애꿎은 정신력 강화 훈련의 희생양이 되어 시달리기 쉽다. 박세리 선수의 성공 이후, 그 후배들에겐 공동묘지 훈련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박상영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모두 ‘할 수 있다’로 정신력 강화의 긍정 주문을 외우게 했다. 이번 아이언맨 윤성빈의 금메달은 어떤 열풍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자기 성취 예언은 좋다. 단 자기기만이 되지 않기 위해 다음 사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간절하게 꿈꾸면 이루는가. 아니다. 비관적 사고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낙천이 장밋빛 미래라면 낙관은 장애물 극복의 규율이 장착된 미래다. 예전에 유행했던 베스트셀러 ‘시크릿’, 끌어당김의 법칙은 낙천적 사고의 대표적 예다. 부(副)나 사랑,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사고다.
간절함의 정도가 아무리 강해도 자기 절제와 규율이 없다면 자기 기만일 뿐이다. 미국의 스톡데일 대령은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 휴가 때 석방될 것”이라는 낙천적 전망만 한 동료들은 계속되는 상심(傷心)을 못 이겨 비관적 사고를 가진 이보다도 먼저 죽고 말았다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발표한 바 있다.
둘째, ‘할 수 있다’의 긍정 주문은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가. 답은 ‘아니다’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실험 결과가 있다. 자존감 상, 중, 하의 그룹으로 구분해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다”라는 긍정적 주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해 말하게 했다. 그리고 아무 주문도 하지 않은 무작위의 대조군과 비교해 보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효과가 있었던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오히려 전보다 더 의기소침해졌다. 성공 주문이 힘을 주기는커녕 ”나는 매력적이다“라는 말이 자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상기시켜 오히려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셋째, ‘하면 된다’의 정신력으로 혹독하게 노력하면 윤성빈(박세리, 박상영)처럼 되는가. 역시 아니다. 이른바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하면 탁월한 경지에 오른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의 창시자인 미 콜로라도대의 K. 앤더스 에릭슨 박사는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기계적 노력은 오히려 퇴보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의 맞춤형 피드백, 당사자의 의식적 노력이 결합되지 않는 ‘노오력’은 배신당할 수밖에 없다. 윤성빈 선수의 금메달 요인은 시크릿 코드보다 코치진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의 역할이 더 크다.
담력, 심력, 염력을 뛰어넘는 것은 의식적 노력과 체계적 피드백이다. 무의식적 ‘노오력’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