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에서 스웨덴 ‘스타브리즈’로…팟캐스트 운영하며 韓 개발환경 비판도
김성은(30) 씨는 지난해 8월 스웨덴으로 훌쩍 떠났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명 게임 개발사 ‘스타브리즈 스튜디오(Starbreeze Studios)’에 입사하기 위해서다. 넥슨이라는 대기업에서 촉망받던 게임 개발자였던 김 씨는 “왜 스웨덴으로 갔는가?”라는 질문에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잠시 한국에 와 있었던 김 씨를 만났다. 독특한 이력과 흔치 않은 결단에 대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잠시 떠난 한국 게임업계의 현주소를 알고 싶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게임 개발자로 지낸 지 6개월. 그는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개발 환경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지고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열 살 때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고, 게임에 매료됐다. 중학교 2학년 때는 RPG 제작 툴인 ‘쯔꾸루’로 게임을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게임제작과’만을 보고 선택했던 특성화 고등학교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김 씨는 주저없이 고등학교 자퇴를 선택했다.
이후 온게임스쿨에 들어가 프로그래밍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2005년 게임·완구업체인 손오공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내 굴지의 게임사인 넥슨으로 이직하면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천편일률적인 상업 게임만 제작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국내 게임사는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낮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과금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상위 1% 구매력에 의존한 게임만 만드는 게 현실입니다. 문화적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수차례 건의하고 항의도 했지만, 결정권자들은 개발자라기보다는 사업가에 가깝다 보니….”
국내 게임개발 환경에 실망한 김 씨의 선택은 해외로 떠나는 것이었다. 한 번도 한국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그가 일본, 유럽에 위치한 해외 게임개발사의 문을 무작정 두드린 것. 그 결과 지난해 거짓말처럼 스타브리즈가 손을 내밀었다. 1998년 설립된 스타브리즈는 라이선스 기반의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명성이 높다. 스타브리즈가 김 씨에게 요구한 것은 학력도, 인맥도 아닌, 실무 능력 하나뿐이었다. 그의 직함은 ‘시니어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Senior Gameplay Programmer)’. 프로그래머는 경력에 따라 ‘주니어’, ‘인터미디에이터’, ‘시니어’로 나뉘는데, 스타브리즈는 김 씨의 능력을 포트폴리오로 평가하고 바로 시니어 등급으로 영입했다.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보다는 업무 집중도를 보는 실력주의 사회라고 할까요. 주어진 일만 완벽하게 해내면 근무시간은 자유롭고, 유연하게 적용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어떻게 일하지?’라고 의문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결과물은 더 좋아지더군요.”
스타브리즈에는 37개국에서 온 개발자들이 모여 있다. 한국 사람은 김 씨가 유일하다. 그는 올해 출시 예정인 ‘오버킬 워킹데드’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유명 드라마 ‘워킹데드’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제작되는 시나리오 게임이다.
“개발팀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최고경영자(CEO)는 물론이고, 다른 사업부가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개발 초기부터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전권이 부여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동그라미를 시켰을 때 세모를 만들면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이곳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줍니다.”
스웨덴으로 떠난 이후 김 씨는 “개발자 K의 게임 ‘개’발 이야기”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이 팟캐스트는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이면과 함께 신랄한 비판으로 업계 사람이나 게임 마니아에게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다. 몸은 잠시 떠났지만, 다른 방식으로 업계와 만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김 씨가 국내 게임 개발 환경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로 돌아와 게임을 개발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게임 개발 환경이 바뀌어야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게임을 만들 수 없어 떠났거든요. 이런 논의가 저와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밝힌 그에게 한국에 돌아오면 꼭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해외는 이미 소재가 고갈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소재가 너무나도 많거든요.”